[장윤호의 체인지업]류현진을 '두번 죽이는(?)' 질문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3.04.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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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상대로 가진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선발로 6⅓이닝 10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3실점(1자책)으로 막으며 퀄리티 스타트했으나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 사진제공= OSEN↑류현진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상대로 가진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선발로 6⅓이닝 10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3실점(1자책)으로 막으며 퀄리티 스타트했으나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 사진제공= OSEN


필자는 3일(한국 시간, 현지 4월2일) LA 다저스 류현진(26)의 데뷔전 후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무려 7시즌에 걸쳐 직장처럼 드나들었던 다저스타디움의 클럽하우스는 지금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

경기가 끝나면 LA 다저스 취재 기자들은 5층에 위치한 프레스박스에서 일제히 지하 클럽하우스로 내려간다. 그리고 감독 먼저 인터뷰를 한 뒤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류현진에 대한 감독의 평가 내용이 항상 기사화되는 것도 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선수 인터뷰에서는 과거 박찬호의 경우를 볼 때 기사 마감 시간 때문에 LA 타임스 등 현지 기자들이 통역과 함께 류현진을 먼저 만나고 한국 취재진이 그 다음에 인터뷰를 하는데 이날 류현진은 한미(韓美) 모든 기자들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아마도 류현진의 데뷔전 현장 취재를 한 LA 다저스 담당 미국 기자들 중 누군가가 류현진에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르빗슈를 본 것으로 아는데 오늘 다르빗슈가 아깝게 퍼펙트 게임을 놓쳤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모양이다.



이날 메이저리그의 최대 관심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이란계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27)가 과연 휴스턴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느냐'였다. 그런데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대 기록이 9회말 투아웃 후에 날아갔다.

'다행히(?)' 한국 기자가 아닌 미국 현지 기자가 한 이 질문에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기자 자신이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고 한국과 일본으로 조국은 달라도 같은 아시아 출신 투수들이서 물어본 것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야구 인생 그 어느 순간보다 떨릴 수밖에 없었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패배를 당한 류현진을 '두번 죽이는(?)' 우문(愚問)이 아니었을까 걱정된다.

데뷔전 날, 그것도 패전 투수가 된 한국인 투수에게 느닷없이 대기록을 눈앞에 뒀다가 놓친 일본인 투수에 대해 물어볼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필자도 오랜 기간 박찬호를 취재하면서 때로는 엉뚱한 질문을 해서 상처를 주기도 했고 곤란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싫어도 물어봐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기자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류현진(왼쪽)과 다르빗슈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개막 2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날 다르빗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퍼펙트를 펼치며 8⅔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1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 사진제공=OSEN↑류현진(왼쪽)과 다르빗슈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개막 2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날 다르빗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퍼펙트를 펼치며 8⅔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1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 사진제공=OSEN
류현진과 다르빗슈는 각각 자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의 위치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다르빗슈가 1년 빠른 2012시즌 데뷔했다. 그는 아메리칸리그의 텍사스와 포스팅(입찰) 금액 5,170만달러(약 568억원, 1달러 1,100원 환산)에 6년간 연봉 총액 6,000만달러(660억원)에 계약했다.

류현진은 내셔널리그 LA 다저스와 포스팅금액 2,573만달러(283억원)에 6년간 연봉 총액 3600만달러(396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수준을 보는 메이저리그의 잣대가 두 투수에 대한 대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박찬호가 이런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이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자 이듬해인 1995년 일본 프로의 간판 투수 노모가 같은 팀 LA 다저스에 입단한 것을 놓고 '일본 야구가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을 견제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에이스, 다르빗슈가 2012년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첫해 16승9패 평균 자책점 3.90을 기록하니까 한국 프로야구가 최고 투수, 류현진을 올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시켜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는 억지 주장이다.

↑메이저리그 데뷔전 선발경기를 마치고 LA 다저스 류현진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OSEN↑메이저리그 데뷔전 선발경기를 마치고 LA 다저스 류현진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OSEN
역사상 처음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류현진은 7회 1사 후 상대였던 샌프란시스코 선발 투수 매디슨 범가너 타석에서 교체될 때까지 무려 10안타를 허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자책점(3실점)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저스 수비진이 세차례의 깨끗한 더블 플레이를 펼쳐줬기 때문이었다.

물론 LA 다저스 유격수 저스틴 셀러스가 7회초 샌프란시스코 6번 타자 호아킨 아리아스의 땅볼에 실책을 범해 비자책인 추가 2실점과 강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니까 류현진은 수비진의 도움과 실수를 한꺼번에 경험한 데뷔전이었다.

류현진의 데뷔전에서 LA 다저스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 샌프란시스코에 0-3으로 패했다.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양대 재학 도중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사상 첫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는 1994년 4월9일(현지 8일) 같은 장소 다저스타디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박찬호는 애틀랜타전 9회에 구원 등판해 6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2볼넷 2실점했다. 다저스는 이 경기에서 애틀랜타에 0-6으로 영봉패 당했다.

류현진과 박찬호는 데뷔전에서 출장은 각각 선발과 구원으로 달랐지만 소속 팀은 모두 영봉패를 당했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 닮은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야구팬들은 그들의 데뷔전에서 모두 손에 땀을 쥐는 경험을 했다. LA 다저스는 박찬호가 구원 등판한 애틀랜타전에서 상대 선발 켄트 머커에게 노 히터(no-hitter), 완봉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박찬호에 이어 류현진도 자신의 잊지 못할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다르빗슈 유에게 화려한 조명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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