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박찬호가 연봉 155억원을 받던 과거와 현재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3.03.16 06:00
글자크기
↑ 박찬호 (사진제공= OSEN)↑ 박찬호 (사진제공= OSEN)


한화에서의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박찬호(40)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땡큐(thank you)’에 출연해 깊이가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 만의 관점’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그는 종편 채널 jtbc가 독점 중계하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자신의 최고 전문 분야인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은1라운드(대만 타이중)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0-5로 완패한 것에 발목을 잡혀 결국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야구 기자를 오래 해서인지 필자에게도 특히 힘겹게라도 이길 것으로 보았던 네덜란드전 패배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많이 질문 했다. 식견이 부족하지만 필자는 네덜란드전을 그르치고 만 결정적 원인이 실책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훈련 부족’을 패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책은 충분히 연습을 하면 줄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필자는 금년에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이 3월2일에 시작된다는 것을 야구 전문가들이 판단했다면 국가대표 선수들이 소속된 프로야구 구단들의 해외 전지훈련을 늦어도 1월10일 경에는 시작했어야 3월 초에 맞춰 선수들의 몸이 완전히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본다.



올해 구단들은 대부분 1월20일을 전후 해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열흘 정도만이라도 빨리 훈련에 돌입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하다.

필자가 주장하는 훈련 부족은 국가대표팀이 훈련을 늦게 시작했거나 게을리 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이 소속된 프로야구 구단들의 훈련이 늦어져 결과적으로 국가대표 선수들도 훈련 부족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이 탈락했어도 박찬호의 해설은 이번 제3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결승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해설가로서의 박찬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에 일본과 한국프로야구를 모두 거친 ‘대투수’ 다운 경험이 담겨 있고 경기를 읽는 감각이 탁월하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다만 스스로 인정한 바와 같이 처음으로 하는 것이어서 간혹 가다가 말이 매끄럽지 않고 ‘포볼’ ‘데드볼’ 같이 현재 한국 야구계에서 쓰지 않는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선수로서의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점에서 박찬호는 야구 해설로 축구의 차범근 해설위원과 쌍벽을 이룰만하다.

축구의 월드컵을 연구해서 만든 대회가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이다. 1회 대회가 열린 2006년으로 돌아가보자. 한국 프로야구가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제치는 계기가 바로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것이었다.

4강의 감격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전격적으로 병역 특례가 주어졌다.

박찬호는 2006년 WBC에 국가 대표로 참가했는데 이번 제3회 대회에는 국가대표급 해설위원으로 등장한 것이다. 오랜 기간 특파원으로 동행 취재할 때 박찬호가 싫어하는 기사가 있었다. 바고 ‘돈’에 대한 글이다. 엄청난 수입은 팬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어 당시 박찬호가 좋아하지 않아도 기자들은 ‘돈’ 에 대해 쓸 수 밖에 없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해가 필자의 기억으로는 바로 2006년이다. 그는 33세였던 2006년, 1달러를 단순하게 1,000원으로 환산해서도 무려 15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그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선발이 아닌 롱 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다.

박찬호는 2006년 개막전 로스터 기준 30개 구단 823명의 메이저리거들 가운데 투수로서는 연봉 4위, 타자까지 포함해 전체 12위였다.

2006 메이저리그 전체 연봉 1위는 뉴욕 양키스의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약 216억원, 2168만 727달러)가 차지했으며 투수 1위도 '돈(money)의 제국'의 상징인 뉴욕 양키스의 우완 마이크 무시나(190억원, 1900만달러)였다. 박찬호에게는 2006년이 텍사스와 맺었던 5년 장기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당시 연봉을 이적한 샌디에이고와 텍사스 구단이 서로 분담해 지급했다. 박찬호의 연봉은 달러로 정확하게 1,550만5,142달였는데 이는 소속팀 샌디에이고에서 연봉 1위이면서 샌디에이고 전체 연봉의 22.2%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선수 한 명이 팀 전체 연봉의 1/5 이상을 받았다.

당시 박찬호는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들 중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뉴욕 양키스에 있던 마쓰이 히데키가 1,300만 달러(약 130억원),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현 뉴욕 양키스)가 1,250만달러(약 125억원)였다.

메이저리그 투수 전체에서 박찬호 위에는 1위 마이크 무시나, 2위 앤디 페티트(당시 휴스턴1,642만8,426달러, 약 164억원) 3위 랜디 존슨(당시 뉴욕 양키스 1,566만1,427달러, 약 156억원) 등 3 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허리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국가대표로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기꺼이 참가했던 박찬호의 당시 위상을 보여준 몸값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마운드를 내려 온 박찬호는 야구 해설가에 도전하고 있다. 속물 근성이 있어서인지 필자는 그가 해설가로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땡큐 출연료가 얼마나 될지 또 알고 싶어진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