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레터]헤지펀드 도입 반년…여전한 매수 의존증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2.06.03 17:56
글자크기
"헤지펀드요? 지금 헤지펀드 믿고 매도 리포트를 낼 수 있는 애널리스트가 있을까요?"(애널리스트 A씨)

헤지펀드가 도입되면 '매수' 일색인 증권사 분석 리포트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해말 한국형 헤지펀드가 출범한 지 반년이 됐지만 그 사이 나온 증권사의 매도 분석 리포트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나온 국내 증권사 리포트 3만여건 가운데 주식을 팔라는 매도 의견은 지난 4월 토러스투자증권이 낸 삼성카드 (38,950원 ▲100 +0.26%) 매도 리포트 1건입니다.



헤지펀드가 일반화되면 숏(매도) 전략으로 하락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면서 매도 리포트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던 전망이 빗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대로라면 헤지펀드 도입 전이나 후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헤지펀드가 도입되기 전이었던 지난해에도 매도 리포트는 1건 있었습니다.

매수 리포트를 보면 업황이나 개별 기업의 부정적인 면을 잔뜩 늘어놓고 정작 투자의견은 '매수'를 제시한, '분석 따로 의견 따로'인 리포트가 적잖습니다.



소재 업황 부진을 분석한 메리츠종금증권의 리포트(4월 중순 이후 중국 내수 철강가격 하락세 지속되고 있어 업황모멘텀 부진)나 가구 업황 침체를 지적한 동양증권의 리포트(어려움의 시기, 서광을 기다리며)가 그렇습니다. 리포트를 읽어보면 팔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놓고선 결론에선 여전히 '비중확대', 매수'를 권합니다.

매도 리포트가 실종된 것은 해당 기업과의 '관계'나 소속 증권사의 이해관계 탓도 있지만 주식을 팔라는 리포트로는 아무도 이득을 얻을 게 없는 국내 투자환경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공매도 같은 헤지펀드 전략을 적극 활용하는 외국계 증권사와 달리 국내에서는 매도로는 '실익'을 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헤지펀드가 도입되면서 매도 의견을 낼 여건이 조성된 것은 맞지만 아직 수익이나 해당 기업과의 관계 면에서 자신 있게 팔라고 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그나마 헤지펀드를 이용한 롱숏 전략 리포트에서는 간간이 매도 의견이 눈에 띕니다. 올 들어 각 증권사에서는 같은 업종의 종목을 짝지어 한 종목은 매수(롱)하고 다른 종목은 매도(숏)하라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LG화학 (402,000원 ▲5,500 +1.39%)은 사고 SK이노베이션 (111,800원 ▲400 +0.36%)은 팔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두 종목을 비교했을 때의 포트폴리오상 의견일 뿐 숏 리스트에 오른 종목 자체의 펀더멘탈을 고려한 매도 의견은 아니라는 게 증권사들의 공식 입장입니다. 실제 롱숏 분석 리포트에서 숏 리스트에 오른 종목 대부분은 개별 종목 리포트에서 매수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너저들의 반응도 시큰둥합니다. 한 펀드매너저는 "지금 같은 수준은 참고사항일 뿐 투자에 반영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헤지펀드가 도입된 지 반년. 이제 첫발을 뗀 단계이고 정치권의 이해다툼에 밀려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는 등 예상보다 주변 조력이 미진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핑계 삼기엔 업계 내부의 변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 개인투자자는 "매도 리포트 문제는 벌써 몇 년째 지적돼온 문제 아니냐"며 "헤지펀드 도입 초기라고는 해도 주변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와중에도 제대로 된 분석 리포트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