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스크에 몸살 = KB금융은 회장 선임을 두고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말 사외이사들과 갈등을 일으켰던 황영기 전 회장 후임으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3인이 올랐으나, 강 전 행장만 남고 다른 2인은 불공정성을 내세우며 사퇴했다. 이미 강 전 행장이 내정돼 있으며, 사외이사들도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경영진이 흔들리는 사이 KB금융은 2분기 33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는 등 리딩 뱅크의 자리를 신한지주에 내줬다. 신임 어윤대 회장은 취임사에서 KB금융을 가리켜 "비만증 환자의 모습에, 난파선 수준"이라고 개판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신호탄 = KB와 신한지주는 모두 모범적 지배구조로 정평이 나 있던 국내 간판급 금융그룹이다. 한때 가장 선진적 지배구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KB금융은 '사외이사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사외이사에 강력한 권력을 줬다. 하지만 행장과 사외이사가 결탁,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게 회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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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지주 역시 가장 안정된 지배구조를 자랑해왔다. 재일교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안정적 후계구도를 구축, 금융사 중 유일하게 관치를 피해가며 회사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경영진 간 알력으로 준 오너십 체제의 안정적 지배구조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참에 사외이사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진을 견제,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데서 KB금융과 신한지주 문제가 시작됐다는 인식에서다.
신한지주는 기존 회장과 사장 2인 대표이사 체제를 회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바꾸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앞서 KB금융을 비롯한 국내 지주사들은 은행연합회가 제시한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라 사외이사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인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KB금융을 둘러싼 관치 인사 우려는 남아있다. 신한지주 역시 차기 은행장을 두고 노조가 성명서를 내는 등 이번 지배구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외압이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내년 이사회 및 사외이사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금융회사 경영구조법 개정안을 국회 제출할 계획이다. CEO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측면에서 보완도 중요하지만, 은행의 자율적인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지만, 이런 원론적 얘기보다 실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사외이사 전문성을 살리고,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하며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