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상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요즘 금융가의 관심은 우리금융의 민영화에 쏠려 있다.
여기서 하나금융그룹을 새삼 주목하는 건 그들이 다른 어떤 금융회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승부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단자회사'였던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전환할 때 부터 승부가 시작됐다.
보람은행, 서울은행과의 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과정 역시 얘깃거리들이 적지 않다. 국외자의 눈으로 보면 이른바 '조 상 제 한 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신탁은행)'가 문을 닫고 하나은행이 자력으로 '4대 금융그룹'에 진입한 것 자체가 놀랍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이 승부의 연속이었다. 결국 하나은행은 근 20년에 걸친 금융시장의 권력투쟁에서 현재까지 승자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나금융 사람들은 이미 예민해져 있다. 그들은 치열한 싸움이 피를 부른다는 걸 안다. 그 동안 숱한 피를 흘렸고, 그 기반 위에 오늘을 만들었다. 하나은행은 거칠고 강한 조직이다. 급성장하면서도 옛 '한국투금'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예전과 다르다는 탄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밖에서 보면 '하나은행'은 여전히 '하나은행'이다.
그러나 우리금융 민영화 이슈에 직면한 하나금융은 예전에 비해 훨씬 불안해 보인다. 기회이고, 승부인 건 분명한데, 아이덴티티의 훼손이 걱정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덩치를 키워 얻을 수 있는 효율보다 기업문화의 유실로 인한 비효율이 더 커지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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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의 상대방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 조직, 우리금융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주류 조직의 정신적 연대가 유지될까. 그나마 믿을 건 김승유 회장인데, 그에게 새로운 하나금융을 완결할 시간이 주어질까. 그 이후의 대안은 뭘까. 꼬리를 무는 의구심에 아직 명쾌한 답이 없다.
여기에 하나은행 주류 멤버들의 피해의식도 가세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은 합병을 거치면서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왔다고 느끼고 있다. 큰 승부에 이긴 후 역차별도 그만큼 커진다면, 조직과 개인의 이해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 동안은 견뎌왔지만, 이번 승부 이후 인내의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선택 이후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 지 흥미롭다. 과거와는 승부의 호흡이 달라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