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논리로 보자면 은행과 증권사를 비롯한 다른 금융회사들은 모두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병렬 관계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은행 출신들이 지주회사의 중심에 있고 조직과 영업의 규모도 은행이 월등하기 때문에 ‘은행=모회사, 나머지 금융회사=자회사’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지주사의 고위직은 대부분 은행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은 ‘산하 금융회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면 “자회사가 잘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서, 조금 못하는 게 발견되면 수만명(은행원 숫자를 말하는 듯)이 함께 씹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은행은 사람의 가치를 모른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은행은 은행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도 돈을 번다. ‘돈’과 ‘시스템’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은행은 ‘사고 안치는 사람’을 최우선의 인재상으로 꼽는다.”는 것. 말하자면 ‘위험 회피형 산업’의 기본 속성인 셈이다.
그래서 은행원들은 잘 나가는 증권맨을 보면 흔히 “저 친구는 나이가 몇인데, 연봉이 저렇게 많아?” 하고 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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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행원들은 ‘자회사 직원’이 더 월급을 많이 받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며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고 체계가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관점으로 보면 증권사는 시간이 흘러도, 사고를 안쳐도,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춰도, 돈이 저절로 벌리지는 않는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게 그만큼 많은 돈을 주는 건 당연하며, 그의 나이가 몇인지, 직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은행의 자회사’에서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바뀐 후 조금 달라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더 나빠졌다”고 했다. 과거 은행의 자회사 간섭은 ‘부업’이었지만, 지주회사의 자회사 간섭은 ‘주업’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그가 내놓은 ‘솔루션’도 지주사 인력의 70-80%는 은행 외에서 뽑아야 하며, 가급적 지주사 최고경영진도 비은행 출신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엄청나게 벌어져 있는 ‘은행’과 ‘비은행’의 격차를 좁혀 금융그룹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종사자들이 ‘업’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큰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핵심 이슈는 바로 '지배구조’와 ‘보상체계’다.
재작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투자은행의 보상체계에 대한 범지구적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투자은행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자본시장에 미국식 투자은행의 극단적인 모럴 해저드를 반면교사로 들이대는 건 아무래도 가혹해 보인다.
문제도 있고 위험도 있지만, 제대로 실험해보는 쪽을 권하고 싶다. 어설프게 흉내만 내다 지레 겁먹고 되돌아 오는 걸 여러 번 봤다. 은행 자회사에서 확실히 벗어났을 때 증권사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그 결과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