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삼성특검팀이 못 보고 있는 것

머니투데이 홍찬선 경제부장 2008.01.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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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대소동'과 '메피스토법칙'의 교훈에서 배워야

[광화문]삼성특검팀이 못 보고 있는 것


얼마 전 환경의식이 강한 독일 북부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통량과 소음 및 공기오염이 참을 수 없게 되자 시장은 시민운동 단체와 협의를 거치고 시의회를 열어 자동차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했다. 그러자 교통량은 줄었지만 정체와 소음 및 오염은 더욱 심화됐다. 나아가 그 지역의 경제는 오랫동안 침체되고 말았다.

이 사례는 좋은 의도를 갖고 열심히 한 것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경제학자와 물리학자가 어렵게 사는 아프리카 모로 족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가상 개발프로젝트를 수행해본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소를 치고 기장을 재배하는 모로족을 잘 살게 해주기 위해 병원을 짓고, 소를 괴롭히는 파리를 박멸하기 위해 농약을 투입했으며, 기장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도입하고 고질적인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하수를 개발하고 관개시설도 구축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의도 좋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모로족 개발프젝트 사례

처음에는 모로 족의 생활이 현저히 개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악화돼 결국 모로족의 상황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나빠졌다. 파리가 박멸되고 지하수 개발에 따라 초원이 넓어지면서 소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초원의 확대가 소의 증가속도에 미치지 못하면서 굶주린 소는 풀뿌리까지 캐먹으면서 초원이 황폐해졌고 지하수는 고갈됐기 때문이다.



1월초에 개봉된 ‘꿀벌의 대소동’이란 애니메이션 영화도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꿀벌로 살기를 거부하고 인간 세상으로 나온 주인공 꿀벌(배리)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바네사)을 만나러 갔다가 사람들이 벌꿀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분노했다. 배리는 바네사의 도움을 얻어 사람들이 벌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재판에서 이겼다.

꿀벌들이 재판에 이김으로써 그동안 사람들이 훔쳐갔던 꿀이 꿀벌들에게 돌아오고, 꿀벌들은 더 이상 꿀을 열심히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꿀벌들이 꿀을 만들지 않게 되자 꽃가루받이가 되지 않아 꽃들이 시들고 이 세상은 활력이 없어지게 됐다.

어떤 정책을 시행했을 때 의도한 것과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메피스토법칙’이라고 한다. 복잡한 사회 경제 현상을 다룰 때 세세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시행했을 경우에 전혀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삼성비자금 특검, 과거집착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 관점 기대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특별검사 팀이 구성된 지 4일만인 14일 아침,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인 승지원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자택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어두운 곳에서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오고갔던 비자금의 실체와 검은 거래를 있는 그대로 밝히기 위해 출범한 삼성특검의 활동에 대해 무엇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삼성특검이 투명한 사회와 경제를 만들자는 옳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모로족 개발프로젝트나 꿀벌의 대소동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록 비자금의 실체를 밝히고 검은 거래를 밝히겠지만 그 여파로 한국 경제가 타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후폭풍이 가시지 않고,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값이 불안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국내외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올해 경제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 연구기관들의 전망이다.

194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 톰 휴이 후보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암호해독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를 무시함으로써 진주만의 비극이 일어났다’고 공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조지 마셜 장군이 ‘미군은 일본군 암호를 해독해 진주만 공격 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정보도 얻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자 듀이 후보는 그의 계획을 철회했다. 자신이 집권하는 사익(私益)보다 태평양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국익(國益)을 우선한 결단인 것이다.

국익 위해 당파이익 희생시킨 미국의 톰 휴이 대통령 후보에게 배울 것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든지 용서받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잘못한 재벌을 벌주려다 국민이 다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고, 뿔을 자르려다 소를 죽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특검이 삼성 비자금의 제보를 받기 위해 네이버와 다음에 카페를 만든 것은 부적절한 조치다.

기업 하는 것은 총탄만 없을 뿐이지 죽고 사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부득이하게 옳지 않은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전후 사정을 따져보지 않고 옳지 않은 일만을 문제 삼아 채찍질하는 것은 ‘도덕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잘못된 과거와는 확실히 단절해야 미래가 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와의 단절에만 집착하는 것은 미래가 오기 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국내외의 어려운 환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과거의 일에 발목이 잡혀 전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부문보다 전체의 국익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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