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가왕전', 단순한 대결 아닌 유의미한 도전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5.1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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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음악교류 물꼬 튼 선구자의 첫 발걸음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MBN ‘한일가왕전’이 7일 막을 내렸다. 6부작으로 꾸려졌고, 6주 연속 지상파·종편·케이블 통틀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그런 성적보다 중요한 건 이 콘텐츠의 시도와 의미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9년 Mnet ‘슈퍼스타K’ 이후 15년간 이어지며 다양한 장르, 새로운 방식의 오디션이 열렸다. 이제는 ‘진부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 속에서 ‘한일가왕전’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트로트 오디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뽑힌 이들을 경쟁시켰다. 이처럼 ‘한일가왕전’은 오디션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

‘한일가왕전’의 최종 우승 국가는 한국이었다. 혹자는 ‘한국에서 열렸으니 홈코드 이점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승부가 아니었다. 각국의 톱7이 일곱 차례 경연을 펼쳤고, 한국의 4:3으로 승리했다. 3:3으로 팽팽히 맞선 상황, 한국 오디션의 우승자인 전유진과 우타고코로 리에가 맞붙었고, 단 2점 차로 전유진이 승리했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한일가왕전’이 베일을 벗기 전 우려가 적잖았다. 일단 ‘트롯걸 in 재팬’을 통해 배출된 톱7이 일본 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노래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모습은 ‘경연의 장’이라기 보다는 ‘우정의 무대’였다. 모든 경쟁이 끝난 뒤 열린 갈라쇼에서는 한일 가수 14명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계은숙의 ‘노래하며 춤추며’로 오프닝을 장식했다. 한국 가수지만 일본 무대에서 엔카 가수로서 놀라운 업적을 남긴 계은숙의 노래로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한국의 맏언니 린이 부른 미소라 히바리의 ‘인생외길’, 일본의 맏언니 우타고코로 리에가 선보인 미소라 히바리의 ‘흐르는 강물처럼’ 역시 한국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곡이었다. 한일 대중 문화 교류가 잦지는 않지만 부지불식간 일본 문화가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스미다 아이코의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 무대는 압권이었다. 1990년대, 한국의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울려 퍼지고 제대로 된 가사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이 노래는 스미다 아이코의 환상적인 안무와 함께 재조명됐다. 그 결과 이 무대는 유튜브 상에서 누적 조회수 300만 뷰에 육박한다. 한국인에게 박효신의 ‘눈의 꽃’으로 유명한 이 노래 역시 원래 일본곡이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한일가왕전’에서 또 다른 느낌의 ‘눈의 꽃’을 선사했고, 207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카노우 미유와 스미다 아이코는 SNS 챌린지로 유명한 오오츠카 아이의 ‘사쿠란보’로 통통 튀는 매력을 발휘했고, 마이진은 일본의 전설적인 그룹인 엑스재팬의 ‘엔드리스 레인’으로 화답했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있고 K-팝 가수들이 가장 많이 공연을 여는 곳도 일본이다.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일본 연간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 문화 교류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일본 문화는 ‘왜색’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오랜 기간 한국 시장에서 유통될 수 없었다. 그러다 국민의 정부부터 참여정부 기간인 1998∼2004년, 6년 동안 4차에 걸쳐 문화 개봉이 이뤄졌다. 이후 일본 문화에 대한 장벽이 가장 빨리 낮춰진 영역은 영화였다.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찾는 마니아 팬이 늘었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웬만한 한국 영화 못지않은 흥행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슬램덩크’ 열풍이 불었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반면 일본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는 속도는 더뎠다. 일본 문화 개봉 시기는 아이돌 그룹을 앞세운 K-팝이 정착하고 성장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일본 음악에 대한 니즈가 적은 것도 이유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도 주로 K-팝을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일가왕전’은 그동안 포지션, 정재욱, 브이원 등 한국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던 일본의 명곡들을 일본 가수들의 목소리로 들려주며 일본 노래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는 동시에 기대감을 키웠다.

‘한일가왕전’ 제작진은 "‘한일가왕전’은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에게 큰 도전이자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대형 프로젝트였다"면서 "‘한일가왕전’의 첫 번째 발걸음을 시작으로, 계속 도전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1회성 이벤트가 아닌 꾸준한 한일 음악 교류의 물꼬를 트는 선구자로서 ‘한일가왕전’의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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