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와 정책포기를 구별하라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08.01.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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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당선인 기억해야 할 2가지-규제완화 만병통치약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 기업들은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가 확 풀어지기를 바란다. 서민들은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낮춰주고, 교육 개혁을 통해 허리가 휠 정도인 사교육비를 줄여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국민의 이 같은 여망을 받아들여 이명박 당선인 측은 오는 2월25일 취임을 앞두고 각종 규제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총액출자제도를 폐지하고, 금산분리원칙을 완화하며,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증설을 허용하고, 부동산 양도소득세 부담을 완화해주며, 대학입시를 대교협에 위임한다는 등의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규제완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조직을 통폐합해서 규제를 쥐고 있는 정부조직을 없애겠다는 의욕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각종 규제가 한국 경제의 탄력을 떨어뜨리고 성장잠재력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추진할 때 꼭 고려해야 할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규제완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규제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어, 규제를 정말로 줄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실천의지가 없으면 구호만 요란할 뿐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다. 참여정부에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규제는 오히려 늘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8월에 ‘민관 합동 규제개혁기획단’을 설치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규제는 오히려 634건이나 늘어났다(감사원 자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면서 규제가 업무인 공무원 수를 88만5164명에서 95만1141명으로 7.5% 늘린 게 하나의 원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규제완화가 모든 경제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요술지팡이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할 때는 불필요한 규제인지 아니면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없으면 안되는 규제(혹은 정책)인지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당연하지만 규제완화를 내세워 정책마저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1997년 말에 찾아온 외환위기는 규제(완화)와 정책(포기)을 구분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人災)였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규제를 완화한다면서 외환 관련 정책을 무절제하게 풀었다. 주식투자(Portfolio Investment)와 직접투자(FDI) 등을 통해 유입된 외국자본을 퍼내기 위해, 개인들의 해외투자 한도를 높이고, 종합금융회사와 리스회사 등의 해외투자를 거의 자유화시켰다.


이에 따라 해외투자를 위한 인력과 경험이 없는 종금 및 리스사들이 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의 채권에 앞다퉈 투자함으로써 태국 등에서 외환위기 발생한 이후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 결국 국가 전체가 외환위기로 연결된 것이다. 규제완화라는 미명(美名)아래 경제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까지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건전성 유지를 위한 무장을 해제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외환위기는 규제완화와 정책을 구분하지 못해 일어난 인재(人災)

규제완화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시나리오(Contingency Plan)를 짜놓은 뒤에 시행해야 한다. 또 반드시 규제완화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문들이 상응하는 노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상품개발이나 자산운용 등에 대한 규제를 없앨 경우엔, 해당 금융회사들이 인력을 양성해 규제완화에 따라 치열해지는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산운용 등에 대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진입규제는 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하지 않겠다는 도둑놈 심보일 따름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다면서 탈세와 탈법을 눈감아 준다든지, 고용창출과 환경보호 및 수익성 등을 무시하고 덩치만 키우려고 하는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또 억울한 신용불량자를 구제해주기 위해 능력을 벗어난 과소비를 위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금마저 탕감해주는 것 등은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

규제완화는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시급하게 시행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규제만 완화하면 누적된 경제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규제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정책마저 포기하지 말고 ‘질서 있는 규제완화’가 절실한 이유다. 이명박 당선인이 내세우는 ‘747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규제완화는 현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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