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사,돈풍년 기다리며 CP찍는 사연

머니투데이 강종구 기자 2007.06.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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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이 멀다하고 한번에 수천억원씩 AAA등급 채권을 찍어내던 공기업이 발행잔액 10조를 넘기고 채권 발행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이 공기업의 기업어음(CP)잔액은 이례적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바로 한국토지공사 얘기다.

앞으로도 한국토지공사의 대규모 채권 발행을 구경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발행이 끊기고 CP를 늘리는 이유가 가을 이후 돈풍년에 대비한 나름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4일 현재 한국토지공사의 발행채권 잔액(토지개발채권 등, 보상채권 제외)은 10조670억원 가량이다. 지난해말 6조8650억원에서 올들어 1월 1조9060억원, 2월에 1조2470억원의 대규모 발행으로 10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3월 이후 발행이 뜸하다. 1~2월에는 하루 단위로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발행도 흔하더니 이후에는 한달에 한두번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순발행규모도 3월에 고작 470억원, 4월과 5월엔 각각 10억원에 그쳤다.



반면 기업어음은 올들어 급증, 4~5월에는 한때 2조원에 육박하는 기세다. 웬만해서는 기업어음을 쓰지 않고, 어음으로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길게 가지 않았던 토지공사의 그간 자금조달 패턴과는 완전히 다르다.

토지공사의 기업어음 잔액은 지난해 여름 5000억원 까지 늘었지만 9월들어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 연말까지 제로(0)를 유지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1조원을 훌쩍 넘어서더니 채권발행이 끊긴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 3월말 이후 1조6000억~1조7000억원 수준을 유지했다.

갑자기 채권발행이 중단되고 CP가 늘자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올들어 3~4월 장기 금리가 크게 오르자 조달금리가 크게 오른 점을 감안해 발행시점을 조절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현금흐름상 미스매치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토지공사측의 설명이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작년에 토지개발채권으로 3조8000억원 가량을 조달했고 올해 1~2월에는 영종도 사업 등 자금소요 규모가 커 채권을 대규모로 찍었다"며 "그러나 3~6월에는 토지매각대금으로 예정된 자금집행이 가능할 것 같아 외부조달을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금조달 측면에서 보면 운이 좋았다"며 "올초 채권발행 할 때는 시장 상황이 나름대로 괜찮았고 3월 이후 추가 조달 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금리가 크게 뛰는 등 발행시장 여건이 나빠졌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기업어음은 왜 급격히 증가한 것일까. 연초 자금소요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을 대규모 자금유입이 더 큰 이유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되도록이면 외부자금 쓰지 않고 토지매각대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려는 입장"이라며 "올해 토지매각 대금이 9조원이 넘고 9~10월에 5조원 이상이 집중적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CP를 발행하면 10월경에 거의 다 상환하게 되지만, 채권으로 조달할 경우 연말에 3조원 이상의 유휴자금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토지공사의 현금흐름 불일치가 특히 컸다. 지난해 이후 대규모 사업도 많았지만 판교 등을 포함해 토지매각도 상당액에 달했기 때문. 특히 9~10월 토지매각 대금은 판교 개발 영향이 크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토지매각이 겨울에는 거의 없는 반면 연초에 사업비가 많이 나가고 2분기와 4분기초에 자금유입이 많다"며 "만약 영종도 사업이 작년말에 있었다면 올해 현금흐름 불일치 규모도 이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 채권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연초에 비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하반기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최대 2조원 가량의 외부자금 조달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1조원에서 1조5000억원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토지공사와 함께 부동산과 관련이 깊은 또 다른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도 역시 잔액 10조원을 넘기더니 발행횟수나 규모가 뜸해졌다. 기업어음도 지난해 급증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로 발행되던 공기업 발행이 줄면서 유통시장에서 공사채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재욱 KIS채권평가 부장은 "5년물 기준 공사채 스프레드가 작년 12월~올해 3월 20~25bp까지 상승할 정도로 약세를 보였으나 최근 발행이 줄어서인지 많이 줄었다"며 "최근에는 16bp수준까지 내려왔고 10년물의 경우 21bp까지 올랐던 스프레드가 12bp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장기 투자기관에서 꾸준히 수요가 있다"며 "최근 시장 상황이 나빠 장기물을 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5년물, 7년물 등 공사채 장기물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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