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이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세대 간 돌봄 주택 'Belong'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4.09.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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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 노인이 아이를, 대학생이 노인을 돌봐... 세대 간 소셜믹스로 소속감 높여

편집자주 [편집자주]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복부인을 꿈꾸나 역량 부족이라 다음 생으로 미룹니다. 이번 생은 집을 안주 삼아 '집수다'(집에 대한 수다)로 대신합니다. 짬 나는 대로 짠 내 나는 전 세계 '집사람'(집에 얽힌 사람) 얘기를 풀어봅니다.

영국 체스터의 세대 간 돌봄 마을 '비롱'의 주민들. 치매환자를 지원하는 주택단지인 비롱에는 1층에 탁아소가 있다. 아이와 노인이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 간 교류에 '넛지 효과'(nudge effect)를 줬다. /사진=비롱 빌리지 홈페이지영국 체스터의 세대 간 돌봄 마을 '비롱'의 주민들. 치매환자를 지원하는 주택단지인 비롱에는 1층에 탁아소가 있다. 아이와 노인이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 간 교류에 '넛지 효과'(nudge effect)를 줬다. /사진=비롱 빌리지 홈페이지


"은퇴 후 어디에서 살고 싶습니까."
도시 생활에 치인 4050은 한적한 시골을 꿈꾸지만, 은퇴 당사자인 6070의 답변은 사뭇 다르다.

7300만명에 달하는 미국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 출생)는 과거의 은퇴 세대와 달리 도심을 선호한다. 낯선 교외 지역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소속감 결핍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고령화 속도가 느리지만 2년 내 65세 이상 인구가 거의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구의 노인들도 "종종 사라지기 위해 가는 곳일 뿐"인 요양원 대신 일상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주거 모델을 찾고 있다. '세대 간 돌봄 마을'(intergenerational care village)이 대표적이다.



영국 체스터의 치매환자 지원 주택단지 '비롱'(Belong)에는 영유아 보육시설이 1층에 있다. 이곳의 거주자는 24시간 간병 서비스 시설이나 독립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데 할아버지나 할머니 대신 '위대한 친구'(grand friends)로 불린다. 거주자는 언제든지 아이들을 방문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서 세대 간 즉흥적 만남과 모임이 이뤄지게 소셜믹스(Social mix·사회적 혼합) 설계를 도입했다. 주민 식당에 어린이 구역을 두고 커뮤니티 구역엔 오두막과 지저분한 놀이 테이블 등 놀이 구역을 둬 정원과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건국대 맞은 편 스타시티내 최고급 시니어타운 '더 클래식 500' 전경. 그러나 아무리 비싼 시니어타운이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을 수 없다. 세대 간 돌봄 단지는 이 점에 착안해 아이, 성인, 고령의 성인이 공존하는 작은 '마을'을 모색한다. /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건국대 맞은 편 스타시티내 최고급 시니어타운 '더 클래식 500' 전경. 그러나 아무리 비싼 시니어타운이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을 수 없다. 세대 간 돌봄 단지는 이 점에 착안해 아이, 성인, 고령의 성인이 공존하는 작은 '마을'을 모색한다. /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
그러나 하드웨어만으로 세대 간 어울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못지않게 중요하다. 캐주얼한 행사와 합창 등 일상 보육 활동에 거주자와 어린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모일 수 있게 했다. 24시간 간병시설의 소규모 그룹은 물론이고 노인 가정까지 아이들이 직접 방문하게끔 프로그램을 짰다. 70~90대 주축으로 탁아소 내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 고치고 만들어보는 상설 공방까지 열었다.

세대 간 주택 개발은 노년 공중 보건 솔루션으로 등장했다. 노년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외로움을 도시 개발과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다. 그 중 탁아시설과 통합된 요양원, 대학 캠퍼스의 은퇴자 주택 등이 검증을 거쳐 주거시장에 확산하고 있다. 이런 혼합형 공유 부지 설계는 기존 시니어 타운이나 돌봄 단지보다 사회화, 커뮤니티 구축 및 지식 공유에 더 공을 들인다.



노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특히 치매를 앓는 이들에게 아이들은 잊혀가는 이전 삶(특히 유년기)과 현재를 연결하는 메신저다. 치매 환자는 종종 단기 기억이 먼저 손상되고 장기 기억은 나중에 손상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서를 가르치는 기여 활동도 가능하다. 아이들도 노화가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고 타인에게 뭔가를 주거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영국 체스터의 세대 간 돌봄 마을 '비롱 빌리지'의 식당에 모인 주민들. 치매환자를 지원하는 주택단지이지만 1층에 탁아소 시설을 넣고 아이들과 치매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조성했다. 비스트로 공간에도 어린이 구역을 둬 '노키즈존'과는 거리가 멀다. /사진=비롱 빌리지 사이트영국 체스터의 세대 간 돌봄 마을 '비롱 빌리지'의 식당에 모인 주민들. 치매환자를 지원하는 주택단지이지만 1층에 탁아소 시설을 넣고 아이들과 치매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조성했다. 비스트로 공간에도 어린이 구역을 둬 '노키즈존'과는 거리가 멀다. /사진=비롱 빌리지 사이트
시니어 돌봄에 영유아 보육, 대학생의 주거문제 해결까지 결합한 혼합형 캠퍼스 타운도 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대학캠퍼스나 그 인근에 성인을 위한 주택을 제공하는 대학이 70곳이 넘는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가 성적에 관계없이 평생 학습하고 대학 내 커뮤니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부분이 비영리 돌봄 은퇴 커뮤니티 형태로 초기 가입비를 부과한다.

2020년 애리조나주립대학에 오픈한 미라벨라 단지와 보스턴 외곽의 라셀대학 내 라셀 빌리지는 거주자에게 학생증을 제공해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을 이용하고 학내행사에 참여하게 한다.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의 퍼듀대학도 학생들과 밀접하게 뒤섞인 시니어 주택을 개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캠퍼스와 물리적으로 더 가깝고 연결된 프로그램이 많을수록 세대 간 커뮤니티가 뿌리내릴 가능성이 높다.

피츠버그 채텀대학은 학생과 노인이 같은 단지에 살게끔 설계했다. 대학원생은 시세 이하의 임대료를 내는 대신 요양원 거주자에게 주당 4시간을 내어준다. 학생은 주거비를 줄이고 노인은 청년과 교류할 수 있어서 윈윈이다. 영국 캠프리지대학의 링크에이지(LinkAges)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은퇴 단지의 임대료를 깎아주는 대신 단지 주민들에 소셜미디어 사용법 등을 가르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1일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22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폐지된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윤석열 대통령이 3월 21일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22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폐지된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유럽에서는 기존 집을 공유하는 세대 간 '홈 셰어링'(home sharing)도 수십년 된 주거 형태다. 이 개념이 북미전역에서 네스터리, 스페이스쉐어드 등의 공유 플랫폼으로 진화해 학생과 은퇴 연령의 집주인을 매칭하고 있다.

새로운 주거 단지를 개발하건 기존 집을 활용하건 세대를 섞는 공존 모델은 노인 건강과 육아, 청년 주거, 세대 간 격차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하드웨어에만 주력하는 '분양형' 실버주택은 한계가 명확하다. "우리는 다시 연결돼야 한다."(비벡 머시 미 공중보건복무단장 겸 의무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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