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못 죽인 게 한" 섬뜩한 웃음…'살인 공장'까지 만든 악마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9.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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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가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는 장면. 좌측의 남자 김현양은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을 못 죽여서 한이 맺힙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누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난 놈들"/사진제공=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지존파가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는 장면. 좌측의 남자 김현양은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을 못 죽여서 한이 맺힙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누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난 놈들"/사진제공=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인육을 먹은 게 사실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1994년 9월19일, 연쇄살인 조직 지존파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서에서 취재진과 마주한 지존파 일당은 시종일관 당당했다. 심지어 미소를 띠며 "어머니도 내 손으로 못 죽인 게 한이 된다", "부자를 더 못 죽여 한이 된다" 등 반인륜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모두 20대로 이뤄진 지존파는 1993년 7월 일용직 노동자였던 김기환의 주도로 결성됐다. 지존파는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을 앞세워 일면식도 없는 행인 5명을 살해했다.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해 증거를 안 남겼으며, 사체는 소각하거나 먹어치웠다.



배신한 조직원도 살해…지존파, 어떻게 결성됐나
/사진=국립중앙도서관/사진=국립중앙도서관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은 1968년 3월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세살에 부친을 잃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15살엔 모친마저 중풍으로 쓰러지는 등 불우한 가정사를 겪었다. 이른 나이에 학업을 그만두고 건설 현장으로 내몰린 그는 절망과 좌절에 빠졌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도 포기한 채 도박에 빠져 지냈다.

김기환은 자신의 처지를 부유층 탓으로 돌렸다. 적개심에 휩싸인 그는 급기야 범죄조직을 결성해 '부자 사냥'에 나섰다.



김기환은 1993년 3월 고향 후배 강동은(21)과 교도소 동기 문상록(23), 송봉우(18) 등을 포섭했다. 이후 여기에 강동은의 지인 백병옥(20)과 김현양(22)이 합류해 '지존파'가 결성됐다.

첫 범행은 그해 7월18일 발생했다. 송봉우, 강동은, 백병옥은 '살인 연습'을 한다며 충남 논산시 두계역 근처에서 은행원 최모(23)씨를 납치, 강간했다. 이후 뒤늦게 현장에 합류한 김기환이 "살인 시범을 보여준다"며 최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그런데 최씨를 납치하는 데 앞장섰던 송봉우는 돌연 죄책감을 호소했다. "귀신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고 하더니, 조직을 떠나 자취를 감췄다. 송봉우가 조직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김기환은 곧바로 응징에 나섰다. 송봉우를 야산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체를 암매장했다.


집 개조해 만든 '살인 공장'
지존파가 만든 살인 공장. /사진=국립중앙도서관지존파가 만든 살인 공장. /사진=국립중앙도서관
부자 학살을 꿈꾼 김기환은 1994년 5월 영광군 자택을 허물고 '살인 공장'으로 개조했다. 1년 넘게 막노동해 모은 돈이 밑천이 됐다. 이웃에게는 "어머니를 모실 집을 짓는다"고 말해 의심을 피했다.

다만 김기환은 한달 만인 6월17일 친한 선배의 조카(당시 14살)를 성폭행해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계획이 틀어지자 그는 강동은을 두목으로 임명해 조직을 이끌게 했다.



강동은의 주도로 완공된 살인 공장에는 사제 감옥과 시체 소각장 등이 마련됐다. 지존파는 여기에 범행에 쓸 총과 칼 등을 채워넣었으며, 벤츠, 그랜저 등 고가 차량을 몰고 다니는 행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지존파는 9월5일 살인 공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8일 새벽 3시쯤 악사 이모씨와 이선영양(27)이 탄 그랜저를 탈취, 이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양도 함께 살해하려 했지만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애원하자 지하 감옥에 가뒀다.

일당은 13일 경기 성남 남서울가족공원 근처에서 그랜저를 몰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 소씨 부부를 납치했다. 소씨는 일당에 8000만원을 내놨지만, 아내와 함께 무참히 살해당했다. 지존파는 숨진 소씨 시신을 훼손했다. 김현양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시신 일부를 먹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완전 범죄를 자신한 지존파는 9월15일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이씨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이씨는 당시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 다친 김현양의 간호를 자처하며 읍내 병원으로 따라나섰다. 이후 지존파 일행의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 병원을 탈출, 경찰에 신고했다.

검거 1년만 '형장의 이슬'로
/사진=MBC /사진=MBC
1994년 10월 31일 지존파 일당 전원은 강도살인, 사체유기, 사체손괴, 인육섭취,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단 살인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이경숙은 사형에서 제외됐다. 이경숙은 범죄 단체 가입 및 사체손괴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됐다.

지존파 일당의 사형은 1995년 11월2일 집행됐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사형집행이었으며 1994년 10월6일 사형수 15명의 형을 집행한 지 1년 1개월 만이었다.



사형을 집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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