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없숲ㅣ불친절함에 미처 닿지 못한 “쿵” 소리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8.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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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넘기 힘든 높은 진입장벽에 지치는 시청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극본 손호영, 연출 모완일)에서 고집스럽게 나오는 내레이션 대사다. 8부작인 이 시리즈에서 7화를 제외한 모든 회차에 이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시청자들은 이 대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장면들도 이 말과 어떠한 연계가 있는지 함의가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불친절한 드라마다. 시제도 모호하게 던져놓고 풀이마저 어렵다.

이 대사는 18세기 영국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의 인용이다. 버클리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을 이가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知覺) 된다는 것이다.(If a tree falls in a forest and no one is around to hear it, does it make a sound? esse est percipi)”라는 말을 했다. 경험론자인 버클리는 모든 존재는 지각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봤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이 말을 주 화두로 던진 까닭은 버클리의 의견을 동의해서가 아닌, 그 너머의 사유를 던지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가 바란 의도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안 났다’의 이분법이 아닌,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도 소리다’ ’누군가에게 이 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에 가까워 보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굵은 서사는 사이코패스에게 피해를 입은 숙박업소 주인 영하(김윤석)와 상준(윤계상)의 이야기다. 둘은 직접적인 살해 대상이 아니지만 간접적인 피해 대상이다. 자신들이 운영하던 숙박업소가 범죄 현장이 되고 나서 참상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영하와 상준은 두 사이코패스의 방문에 삶의 터전이 망가지고 정신이 으스러진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메시지를 관통하는 두 인물 영하와 상준은 숲에서 혼자 쓰러지는 나무다. 그리고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다. 두 인물은 펜션과 모텔을 찾은 손님에 의해 기둥이 잘리고 돌을 맞는다. 두 인물의 몸과 마음에서 피가 폭포처럼 흐른다. 하지만 둘의 입장은 좀 다르다. 영하는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상준은 던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돌에 맞아 피를 흘린다. 때문에 이 작품이 집요하게 외치는 “쿵” 소리의 지각은 영하에게는 있고 상준에게는 없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모완일 감독은 작품 속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며 몰입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두 인물의 펜션과 모텔을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대입하기까지 그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일단 사이코패스를 만나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영하와 상준이 겪는 괴로움은 과몰입하기가 뼈아프다. 피가 낭자하는 스릴러물을 내 이야기로 보고 몰입하기란 어렵다. 더욱이 출연배우인 고민시(성아 역)조차 “후반부에 들어서기 전까지 불친절한 드라마”라고 말했다.


매 회차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 메아리치는 내레이션은 머리를 더 어지럽힌다. 반복되는 말은 자연스레 의미를 곱씹게 되고, 곱씹다 보면 어느샌가 말이 심오하게 느껴진다. 이 심오한 잔상이 많은 이들에게 미처 “쿵” 소리가 닿지 못한 채 진입 장벽이 높은 작품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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