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극본 손호영, 연출 모완일)에서 고집스럽게 나오는 내레이션 대사다. 8부작인 이 시리즈에서 7화를 제외한 모든 회차에 이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시청자들은 이 대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장면들도 이 말과 어떠한 연계가 있는지 함의가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불친절한 드라마다. 시제도 모호하게 던져놓고 풀이마저 어렵다.
이 대사는 18세기 영국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의 인용이다. 버클리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을 이가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知覺) 된다는 것이다.(If a tree falls in a forest and no one is around to hear it, does it make a sound? esse est percipi)”라는 말을 했다. 경험론자인 버클리는 모든 존재는 지각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봤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이 말을 주 화두로 던진 까닭은 버클리의 의견을 동의해서가 아닌, 그 너머의 사유를 던지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가 바란 의도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안 났다’의 이분법이 아닌,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도 소리다’ ’누군가에게 이 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에 가까워 보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 사진=넷플릭스
모완일 감독은 작품 속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며 몰입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두 인물의 펜션과 모텔을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대입하기까지 그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일단 사이코패스를 만나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영하와 상준이 겪는 괴로움은 과몰입하기가 뼈아프다. 피가 낭자하는 스릴러물을 내 이야기로 보고 몰입하기란 어렵다. 더욱이 출연배우인 고민시(성아 역)조차 “후반부에 들어서기 전까지 불친절한 드라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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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회차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 메아리치는 내레이션은 머리를 더 어지럽힌다. 반복되는 말은 자연스레 의미를 곱씹게 되고, 곱씹다 보면 어느샌가 말이 심오하게 느껴진다. 이 심오한 잔상이 많은 이들에게 미처 “쿵” 소리가 닿지 못한 채 진입 장벽이 높은 작품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