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브로커 박주임 사건 판박이"…LG사위는 어떻게 국적을 위조했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4.08.2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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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구본무 LG 회장의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국내 한 기업과 투자협약을 맺은 후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고 구본무 LG 회장의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국내 한 기업과 투자협약을 맺은 후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머니투데이 DB


"2000~2010년대 있었던 국적 위조 브로커 '박주임' 사건의 판박이다."

본지가 26일 단독보도한 LG 총수일가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의 과테말라 국적 위조와 병역면탈 의혹을 두고 법조계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2012년 국내 수도권 등지의 외국인학교 부정입학을 위해 부유층 자제들이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의 국적을 위조했다가 적발돼 처벌받았던 사건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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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직이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조카며느리이자 I그룹 회장의 며느리,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며느리 박상아씨(벌금형 약식기소), D그룹 회장 며느리 등이 대거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수사에 관여했던 법조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남미 국적을 위조해 병역을 회피하는 신종 수법이 종종 발각돼 처벌되곤 했는데 당시 외국인학교 사건으로 브로커 등의 존재가 대대적으로 확인됐다"며 "윤 대표가 2000년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했다고 주장하는 게 이런 위조 사례라면 이쪽 방면에서 상당히 앞선 '선구자'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10년전 브로커 박주임 사건 판박이"…LG사위는 어떻게 국적을 위조했나
2012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표에 대해 제기된 의혹과 흡사하게 당시에도 중남미 국가 여권과 거주신분증 위조 사례가 대다수였다. 대부분이 과테말라·에콰도르·온두라스 등 중남미 국가 5~6곳의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행정력이 허술한 중남미를 중심으로, 특히 과테말라 현지에서 활동하며 '박주임'(당시 36세)으로 불렸던 여권위조 브로커가 사건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적발된 50여명 가운데 30명가량이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한 경우였다.

검찰이 압수했던 위조 과테말라 국적 여권은 출입국업무 전문가들도 진짜 여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게 위조됐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여권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형광반응을 포함해 대부분이 진본에 가깝게 위조돼 전문가들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위조여권의 기본가격은 2012년 당시 4000만원 수준으로 여권 제작비용 2만4000달러, 브로커 심부름값 5000달러가 기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넷 등에 공개된 업체가 아니라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 의뢰하는 구조라 미리 의뢰인의 재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의뢰인의 형편에 따라 재벌가나 알짜 중견기업가 집안의 경우 비용을 1억5000만원까지 받았다.


브로커 '박주임'은 초기에는 의뢰인이 과테말라 등에 2∼3일 동안 단기 체류하는 동안 매수한 현지 공무원으로부터 해당국의 여권과 시민권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다가 나중에는 현지 방문도 없이 여권을 위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뢰인들은 위조여권 등으로도 국내에서 한국 국적 상실 신고 절차를 무리 없이 통과해 외국인학교에 입학하거나 병역을 회피했다.

윤관 BRV 대표 외국 국적 취득 과정. /그래픽=김다나윤관 BRV 대표 외국 국적 취득 과정. /그래픽=김다나
사회지도층과 부유층 중심으로 행해진 국적세탁 범죄에 대해 법원은 대부분 징역형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2012년 외국인학교 사건 당시 1차 수사 대상자 47명 중 1명이 구속기소, 31명이 불구속기소돼 징역 6~10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약식기소됐던 15명은 벌금형을 받았다.



윤 대표의 경우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했다고 주장하는 2000년 이후 2004년과 2011년 각각 취득한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국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중대한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유 등으로 시민권을 박탈하는 사례가 최근 10여년 동안 속출하고 있다. 미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2017년 6월 성범죄전과 사실을 감추고 시민권을 취득했던 멕시코계 귀화 이민자의 국적을 20여년만에 박탈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대표가 편법이지만 실제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했던 것인지, 국적 위조서류를 받아 활용했던 것인지, 위조였다면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과테말라 당국이 우리 외교라인을 통해 국적 취득 사실이 없다고 통보한 사실을 바탕으로 보면 위조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이 경우 미국 시민권 유지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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