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 억울합니다"…거꾸로 돌아간 대한민국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4.03.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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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요즘 여의도(국회)는 서초동(법원) 없인 안 돌아가요."

최근 얘기가 아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2020년 무렵 수도권에서 3선을 지낸 국회의원에게 들었던 고백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국회에선 이미 고소·고발 전쟁이 한창이었다. 상대편 당을 넘어 같은 당끼리도 서로를 탓하다 법원을 찾는 일이 잦았다.

당시 '정치마저 사법에 의지하는 건 무책임하지 않냐'는 반박(?)에 3선 의원이 내놓은 답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긴 한데 이게 또 깔끔하긴 합니다."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타협이 직업인 정치인에게서 예상한 말은 아니었다. 3선의 경험이 '법대로'가 편하다고 할 정도니 눈 돌리는 곳마다 튀어나오는 사법만능주의를 두고 당사자들만 탓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난주 신숙희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다 그때 그 3선 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전공의들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데 대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법원의 영역으로 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와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에서 풀려고 해선 곤란하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절실하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신 후보자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벌써 정부와 의사단체, 또 외곽의 다른 시민단체 사이에 적잖은 고소·고발이 진행 중이다. 의대 증원 문제가 여의도를 넘어 일상으로 범람한 사법만능주의의 또 다른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소송할 권리, 법의 판단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의 권리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인권이 강해지면 법적 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커진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조율과 조정보다 이른바 '갈 데까지 가보자'에 기대는 '소송 과잉'이 바람직할 순 없다. 사회적으로 풀지 못한 강대강 대치를 영화 '타짜'에 나오는 장면처럼 "쫄리면 뒈지시든가"를 외치며 법에, 좀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판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지난하고 고된 민주적 방식을 포기한 채 '사또'가 내준 결론을 솔로몬의 혜안이라고 위안 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과잉 소송은 재판 지연이라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치명적이다. 누구나 내 사건에는 공명정대한 법의 잣대가 적용되길 바라지만 최근 수년 동안 부풀려진 과잉 소송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법의 결론을 향해 폭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말까지 최근 5년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재판 관련 민원이 12만건을 넘어선다는 통계(대법원 '전국 법원 민원 접수 및 처리현황 자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 민원이 지난해에만 2만2000여건으로 1년 전보다 1.6배 늘었다. 사법부가 법관 증원을 추진하지만 인력 늘리기 같은 단편적 해결책보다 사법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당장은 좋고 편하겠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무작정 "사또 억울합니다"를 외치는 건 결국 스스로 무능에 빠져드는 길이다. '타짜'의 결말엔 "노름꾼의 결론은 하나, 결국 다치거나 죽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어느 문명, 어느 문화를 가리지 않고 무능을 자인한 끝은 자멸일 수밖에 없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지 말자. 그토록 '사또'를 벗어나려 한 수천년 역사의 결실이 오늘의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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