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엔케이컨텐츠
가족과 오래된 연인을 뒤로 하고 뉴질랜드로 떠나는 20대 후반 여성 계나(고아성). 계나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심플하다. 두 마디로는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는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물론 누구나 자신의 고국을 싫어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어쨌거나 태어나 평생을 자란 땅을 벗어나려고 할 때는 제법 비장한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계나의 이유들은 사람들에 따라 ‘겨우 그 정도로?’라고 반문할 법도 하다.
사진=㈜엔케이컨텐츠
영화는 한국의 계나와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 다시 한국에 잠시 들른 계나를 교차하며 보여주며 관객에게 두 공간의 삶을 비교하며 지켜볼 수 있게 만든다. 여기서 관객의 평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나는 그게 진짜 행복이야”라던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들이 정말 한국에선 불가능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남기 때문. 이는 영화가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의 삶을 다소 납작하게 그려낸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 달리 만면에 미소를 띤 계나를 보여주지만 계나가 추구한 삶이 어떤 것인지 설득력 있게 혹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공감이 덜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얻지 못한 행복이 저곳에 있을 거란 막연한 환상으로 버무리는 건 아니다. 뉴질랜드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고, 인종차별이 있고, 그곳에서 몇 년간 살았어도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음을 조금씩이나마 보여준다.
원작소설이 나오던 2015년은 헬조선이란 단어가 공공연하던 때였다. 지금은 헬조선이란 단어가 다소 낡은 듯한 느낌을 주지만 영화가 개봉하는 2024년의 한국은 여전히 스스럼없이 행복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결혼을 넘어 연애까지 포기한다는 청춘이 많은 나라를 행복하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심지어 원작소설 이후로 한국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과 ‘N번방 사건’, ‘이태원 참사’ 등을 겪었다. 강남으로 출근하던 20대 청년 여성 계나가 충분히 겪을 수 있었던 그 사건들을 곱씹다 보면 설령 대안이 없을지언정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는 말에 수긍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사진=㈜엔케이컨텐츠
계나의 선택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자연스러운, 극단의 생존주의가 만연한 작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해 곱씹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나 등등 청춘은 물론 청춘이 아니어도 현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고민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달까. 그러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맥을 짚더라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장건재 감독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는 8월 28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07분. 영화 관람 전후로 원작소설을 함께 읽으면 더욱 다채로운 사고(思考)와 감상이 가능할 것이니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