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 반지하로 통하는 출입문 밖으로 주황색 천막 호스가 나와있다. 반지하 가구에 물이 차면 천막 호스를 통해 대문 밖에 설치된 빗물받이로 빗물을 보낸다./사진=최지은 기자
17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70대 여성 A씨는 대문 밖으로 나와 있는 주황색 천막 호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A씨가 거주하는 건물 반지하에는 2가구가 살고 있다. 한 가구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거주 중이다. A씨는 "대비한다고 해도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늘 불안하다"며 "특히 할머니 한 분이 반지하에 거주하셔서 걱정된다"고 밝혔다.
전날 밤부터 서울에 시간당 최대 84㎜의 집중호우가 내린 가운데 반지하가 모인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 주민들은 적잖은 불안감을 나타냈다. 2년 전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2022년 중부지역 집중 호우로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각각 7049명, 654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관악구는 2년 전 참사 이후 반지하 가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도로에 빗물이 넘쳐도 창문을 통해 반지하 가구 안으로 물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장치다. 17일 서울 관악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 설치된 물막이판 위에 '수해예방용 물막이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1동의 한 주택 대문앞에 물막이 판이 설치 돼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이곳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김모씨(82)는 "큰 비가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잠이 안 온다"며 "2년 전 침수 이후로 물막이판을 보강하고 역류 방지 장치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김씨 빌라에는 반지하 2세대가 있다. 이날도 김씨는 물막이판과 빌라 주변 하수구를 점검했다.
오후 들어 점차 바람이 강해지자 김씨의 걱정도 커졌다. 그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자신의 빌라 앞에서 연신 담배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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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동1동 한 다세대 주택의 하수구. 하수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철제 그물망을 설치해 놨다. /사진=정세진 기자
박씨와 김씨는 반지하 주택이 몰려 있는 사당1동 주택가 사이 도로를 걸으며 막힌 하수구는 없는지 점검했다.
사당1동에서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주민 중에 2년 전 침수 피해를 보고도 이사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도 많다"며 "우리 사무실도 2년 전에 침수가 됐지만 올해는 그래도 걱정이 덜 한 편이다"라고 했다. 이씨는 "역류방지 장치가 설치돼 있고 하수도 배관도 늘렸다"며 "날씨가 신경 쓰이긴 해도 2년 전만큼은 아니다"고 했다.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1동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이곳은 2022년 여름 침수 피해를 입었다. 대표 이모씨가 당시 물이 차오른 높이를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장씨는 "침수가 시작되면 물막이판으로 막을 겨를도 없이 가게 안으로 밀려 물이 밀려 들어온다"며 "소용없을 것 같다. 천재지변은 내가 뭘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18일 오전까지 중부 내륙을 중심으로 대류성 강수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정체전선이 느리게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도권과 함께 충청 북부 지역에도 집중호우가 내릴 전망이다. 17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수도권 지역 예상 누적 강수량은 80~150㎜다. 일부 지역은 200㎜ 이상 내릴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