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
캐릭터로 기억에 남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설경구나 최민식처럼 메소드 연기를 하는 이들도 너무 많은 작품을 하다 보면 결국 원래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투영되게 마련이다. 즉, 힘을 빼 뇌리에 치명적인 기억으로 남기지 않으면서도 계속 궁금하게 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바로 주민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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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경은 ‘힙하게’에서 줄거리의 주된 줄기를 잡고 있지 않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붙들고 있다. 이는 개그 프로그램 연출자 출신 김석윤 감독의 주특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개그에서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 등퇴장하면서 한 번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주로 ‘덜덜이’라고 불리는 포지션인데 주민경은 ‘힙하게’에서 나올 때마다 웃음을 주며 ‘명품 덜덜이’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그가 연기하는 배옥희는 예분(한지민)의 둘도 없는 친구로 ‘옥희덕희수퍼’집 딸이다. 일진 출신으로 살벌한 과거가 있지만 심드렁한 표정 속에 숨기고 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 하지만 예분에게 생긴 특별한 능력 때문에 조금씩 그의 일진경력이 드러나고, 늘 그의 곁에 있는 ‘놀던 동생’들의 활약으로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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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개그 연기를 주로 하던 김용명은 무대에서나 다름없는 기묘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주민경이 그의 존재를 잘 받아주기 때문에 두 사람의 코믹 연기는 빛을 발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커플 정현옥(박선영)과 원종묵(김희원)의 청춘 드라마 같은 중년의 풋사랑과 더불어 옥희와 용명의 사랑은 극의 코믹 코드를 떠받치는 기둥추가 된다.
주민경이 필모그래피에서 이렇게 대놓고 코믹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면 다들 놀랄 수밖에 없다. 처음 하는 것치고는 현직 개그맨과의 호흡이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성, 일상성이 주민경을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다. 그는 어느 역할에 붙어도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메소드 연기가 없어도, 그는 직장인 같고 어느 전업주부 엄마 같으며 지리산 관리사무소에 있었던 것 같은 ‘레인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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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모습은 연예인의 모습답지 않게 자존감이 높지 않다. 늘 불안하고 작업을 하기 전 표현해야 하는 배역이 자신을 짓누르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늘 노력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주민경의 배우 생활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자랑스럽게도 주민경은 조금씩 조금씩 대중의 시선 밖에서부터 영글어져 이제는 대중의 시선 속에서도 기대를 충족하는 이름이 됐다. ‘힙하게’가 어떤 성과와 의미를 남긴 채 막을 내릴지는 모를지라도, 옥희와 용명 커플이 보여줬던 재미의 찰나 그리고 그 순간에서 주민경에게 번득였던 코미디 연기의 새로운 모습은 작품의 발견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평범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얼굴, 조금은 낮고 굵은 목소리.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갈고 닦아 주민경은 주목받는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힙하게’라는 제목을 어디 출연배우에게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주민경의 미래에 살짝 갖다 붙여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