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게' 주민경,우리동네서 만난 듯한데 맞나요?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9.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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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함과 평범함으로 무장해제시키는 '찐' 연기고수

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


배우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배우상은 연기를 할 때 배우의 이름이 도드라지지 않는 일이다. 항상 캐릭터가 앞서고, 자신이 펼친 연기 뒤에 진짜 이름이 숨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떤 배우든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이야기할 때 “캐릭터로서 기억되고 싶다”고 하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캐릭터로 기억에 남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설경구나 최민식처럼 메소드 연기를 하는 이들도 너무 많은 작품을 하다 보면 결국 원래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투영되게 마련이다. 즉, 힘을 빼 뇌리에 치명적인 기억으로 남기지 않으면서도 계속 궁금하게 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바로 주민경처럼.



주민경이 누군가.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의 방해꾼이었다 지지자가 되는 금보라, ‘지리산’에서 정구영(오정세)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양선후배’ 이양선 그리고 ‘그린마더스클럽’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던 ‘수인 엄마’ 박윤주.

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


어떤 특별한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가. 그는 지금 JTBC 주말드라마 ‘힙하게’에서 배옥희 역으로 이른바 ‘날아다니고’ 있다. 그의 심드렁한 모습과 눈빛이 나오는 순간, 많은 시청자들이 각 잡고 TV를 보기 시작하고 그가 김용명 역으로 나오는 김용명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혐오와 사랑이 순간순간 오가는 눈빛으로 김용명을 바라보는 순간 사랑의 어떤 ‘경지’를 바라볼 수 있다.

주민경은 ‘힙하게’에서 줄거리의 주된 줄기를 잡고 있지 않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붙들고 있다. 이는 개그 프로그램 연출자 출신 김석윤 감독의 주특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개그에서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 등퇴장하면서 한 번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주로 ‘덜덜이’라고 불리는 포지션인데 주민경은 ‘힙하게’에서 나올 때마다 웃음을 주며 ‘명품 덜덜이’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그가 연기하는 배옥희는 예분(한지민)의 둘도 없는 친구로 ‘옥희덕희수퍼’집 딸이다. 일진 출신으로 살벌한 과거가 있지만 심드렁한 표정 속에 숨기고 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 하지만 예분에게 생긴 특별한 능력 때문에 조금씩 그의 일진경력이 드러나고, 늘 그의 곁에 있는 ‘놀던 동생’들의 활약으로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본다.


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
그 와중에 김용명을 만난다. 두 사람은 김용명이 배옥희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일방적인 관계였지만, 어느 날 용명의 남자다운 모습을 본 옥희가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한 번 다르게 보인 용명의 모습은 옥희의 머릿속에서 자꾸 좋은 이미지로 윤색된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치명적인 사랑이 싹튼다.

지금까지 개그 연기를 주로 하던 김용명은 무대에서나 다름없는 기묘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주민경이 그의 존재를 잘 받아주기 때문에 두 사람의 코믹 연기는 빛을 발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커플 정현옥(박선영)과 원종묵(김희원)의 청춘 드라마 같은 중년의 풋사랑과 더불어 옥희와 용명의 사랑은 극의 코믹 코드를 떠받치는 기둥추가 된다.

주민경이 필모그래피에서 이렇게 대놓고 코믹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면 다들 놀랄 수밖에 없다. 처음 하는 것치고는 현직 개그맨과의 호흡이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성, 일상성이 주민경을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다. 그는 어느 역할에 붙어도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메소드 연기가 없어도, 그는 직장인 같고 어느 전업주부 엄마 같으며 지리산 관리사무소에 있었던 것 같은 ‘레인저’로 보인다.

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사진=스튜디오피닉스, SLL
예체능에 대한 꿈이 있던 어린 시절, 집안의 여건이 되지 않아 예술중학교를 준비하다 인문계 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한국무용을 접하고 우연히 만났던 미술에 빠져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왔다. 프랑스에서 영화학교, 사진학교를 알게 되고 그 친구들의 작업에 등장하면서 배우에 대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 스스로는 처음부터 압도적인 미모로 앵글을 장악하는 배우로서의 꿈은 꾸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 이유로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모습은 연예인의 모습답지 않게 자존감이 높지 않다. 늘 불안하고 작업을 하기 전 표현해야 하는 배역이 자신을 짓누르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늘 노력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주민경의 배우 생활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자랑스럽게도 주민경은 조금씩 조금씩 대중의 시선 밖에서부터 영글어져 이제는 대중의 시선 속에서도 기대를 충족하는 이름이 됐다. ‘힙하게’가 어떤 성과와 의미를 남긴 채 막을 내릴지는 모를지라도, 옥희와 용명 커플이 보여줬던 재미의 찰나 그리고 그 순간에서 주민경에게 번득였던 코미디 연기의 새로운 모습은 작품의 발견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평범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얼굴, 조금은 낮고 굵은 목소리.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갈고 닦아 주민경은 주목받는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힙하게’라는 제목을 어디 출연배우에게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주민경의 미래에 살짝 갖다 붙여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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