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쪼개 자전거 도로를 만든 한국(왼쪽)과 차선을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확보한 프랑스(오른쪽)/사진=한승훈 제공
파리 '15분 도시' 프로젝트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소르본대 산하 기업가정신·지역·혁신 연구소(Chaire-ETI)의 한승훈 도시디자이너는 지난해 11월 소르본대 비즈니스스쿨(파리 IAE)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습니다.
파리는 이미 운전하는 것보다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모는 게 더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확보한 자전거 도로만 1200㎞에 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15분' 거리 내에 거주(Living), 업무(Working), 생활서비스공급(Supplying), 건강(Caring), 학습(Learning), 여가(Enjoying) 6가지 요소를 채워넣는 프로젝트가 '15분 도시'입니다.
소르본대 산하 기업가정신·지역·혁신 연구소(Chaire-ETI)의 한승훈 도시디자이너/사진=한승훈 제공
"우리나라도 자전거 도로를 많이들 만들었지만 자전거를 타기 정말 어렵죠. 말도 안 되는 자전거 도로들이 많아요. 제가 서울에 갈 때마다 그런 이상한 자전거 도로들 사진을 찍어두는데요. 자전거 도로와 차선 및 보행로만 제대로 분리해도, 한국에서 '15분 도시' 콘셉트가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 디자이너가 공유해준 국내의 '말도 안 되는' 자전거 도로의 사례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가 아무데나 무질서하게 주차돼 있는 모습, 보행자와 자전거 도로가 겸해져있는 도로의 모습, 각종 시설물에 자전거 도로가 가로막혀 있어 주행을 어렵게 하는 모습, 자전거 도로와 차도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모습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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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디자이너가 강조한 '제대로 된 자전거 도로'의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를 자동차에 준하는 이동 수단으로 여기고 자전거 도로용 횡단보도나 신호등을 확보할 것, 대중교통과 연계성을 확대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역 인근에 거치대를 많이 확보할 것, 자전거 도로가 도시 내에서 끊기지 않고 원활하게 지나갈 수 있게 디자인을 할 것 등입니다.
한 디자이너는 "차도와 인도와 확실하게 분리된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면, 전동 킥보드를 둘러싼 '킥라니'라는 말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파리의 경우 자전거 도로에는 전동 킥보드는 물론이고, 모든 바퀴 달린 것들이 지나다닌다. 휠체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쪽으로 포용력도 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파리가 확보하고 있는 확실하게 구분된 자전거 도로. 핵심은 인도가 아니라 차도를 줄이는 것이다./사진=최경민 기자
자전거를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15분 도시'에서 걷는 것의 대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걸어서 가기에 힘든 곳에는 자전거를, 혹은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연계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죠. 자동차는 왜 최대한 지양하느냐고요? 자전거와 달리 자동차는 목적지 지향적이어서 특정 건물의 주차장까지 한번에 달리기 때문입니다. 대형 건물들이 모여있는 특정 도심 지역이 발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주차'의 압박이 덜한 자전거는 이동 중에 언제든 내려 '우리 동네'에 위치한 각종 서비스들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동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빌리티가 자전거인 셈입니다. 도보의 약점을 보완하고, 대중교통과 연계성을 높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자전거 도로'가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한 중요 조건인 이유입니다.
사람, 자전거, 자동차가 확실하게 구분된 도로. 한승훈 도시디자이너 스케치/사진=한승훈 제공
그는 "이런 식으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임이 확실하다. 서울시 전체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잖나"라며 "한 동이라도 그렇게 만들어서 효과를 지켜보는 건 어떨까.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단계적으로 그 효과를 보여주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질 수 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들도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콘셉트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