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21세기 가장 실속 없는 장사

머니투데이 송정렬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2.03.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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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열의 Echo]

#"우리는 당신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2022년의 현대기술은 아마도 주택가와 유치원, 병원을 목표로 하는 탱크와 다연장로켓발사기, 미사일에 대한 최고의 해결책입니다."

마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달 초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보낸 서한이다. 올해 31세인 페도로프 장관은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답게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삼성전자를 비롯해 애플, 아마존, 구글, 스페이스X 등 주요 기술기업들에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해달라는 'SOS'를 날렸다.



기술기업들은 즉시 응답했다. 애플은 러시아에서 아이폰 등 모든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애플페이 결제서비스도 제한했다. 심지어 러시아 이외 지역 앱스토어에서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와 통신사 스푸트니크의 앱(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도 금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자사 제품의 판매와 서비스 중단을 넘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는 데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아마존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온라인 주문에 대한 제품선적을 중단키로 했다.



마치 기술기업들로 구성된 어벤져스가 이웃 나라를 침략한 '차르'로 불리는 빌런과 한 판 대결을 펼치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불린다. 양국 정규군의 교전 외에 해킹·사이버공격을 활용하는 사이버전, 가짜뉴스를 앞세운 심리전 등이 동시에 펼쳐져서다.

실제로 총 대신 키보드가 먼저 불을 뿜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선을 넘기 전에 우크라이나의 국가기관과 은행들에 대규모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이 감행됐다. 아무리 발뺌을 해도 사이버전담부대까지 보유한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규전뿐 아니라 사이버전에서도 압도적 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기업들이 우크라이나 편에 서면서 전황은 푸틴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2000여개 위성을 활용하는 스페이스X의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통해 러시아의 공격으로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 지역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 러시아가 발끈하자 머스크는 오히려 푸틴에게 1대1 결투를 신청하며 조롱했다. 메타(옛 페이스북)·구글 등은 자사 플랫폼에서 러시아 국영매체들의 활동을 제한하며 러시아의 선전선동 '창구'를 봉쇄했다.

기술기업들의 '러시아 손절'은 핵폭탄급 파괴력을 갖는다. 당장 그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사라진 우리의 일상을 상상해보라. 러시아의 충격과 혼란의 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21세기 전쟁은 피해는 막대하고 수익은 낮은 실속 없는 사업이라고 진단했다. 로마 시대 등 옛날처럼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오늘날 경제적 자산은 금광, 유전 등 물질이 아니라 기술적, 제도적 지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리콘밸리의 지식을 정복할 순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자폭탄 개발 이후 전쟁은 승패와 상관없이 집단자살을 의미하면서 인류는 더욱 전쟁을 피하게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넘어 핵전쟁 위협 발언도 서슴지 않는 푸틴을 보노라면 그 경고가 허투루 들리진 않는다.

그러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전 세계인의 응원이 담긴 '#StandWithUkraine'(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넘쳐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인간은 어리석지만 이렇게 노래한다. "나라들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어렵진 않아요. 죽이거나 죽을 일은 없어요…. 평화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상상해봐요."(존 레넌의 'Imagine'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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