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있는' 광명과 '코스트코 없는' 광주

머니투데이 송정렬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2.02.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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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열의 Echo]

#가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찾는 곳이 이케아 광명점이다. 딱히 인테리어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각종 가구와 소품으로 꾸민 쇼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성비 갑'의 한 끼 식사와 커피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곳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바로 '상전벽해'(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다.

2014년 말 '글로벌 가구공룡'으로 불리는 이케아가 마침내 국내에 진출했다. "조립식 가구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개장 첫날부터 이케아 매장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첫 방문 당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이케아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색칠된 광명점 건물과 허허벌판이던 주변의 강렬한 대조였다. '왜 이렇게 외딴곳에 매장을 만들었을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불과 7년여 만에 이케아 광명점의 주변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로 옆에는 복합쇼핑몰 롯데몰이 자리잡았고 길 건너편에는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 코스트코가 있다. 초대형 쇼핑시설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당연히 사람이 몰린다. 오래전 황량한 벌판에는 초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빼곡히 들어찼다. 애초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광명역세권 개발사업이라는 큰 그림이 있었지만 이 지역의 눈부신 변화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사람을 불러들인 이케아의 역할 또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이케아의 국내 매장 수는 4개로 늘었고, 연 매출규모는 6872억원에 달한다. 임직원 수는 2191명이다. 단순계산으로 매장 하나당 17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며 500개 넘는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강력한 모객파워를 지닌 유통매장 하나가 지역발전에 얼마나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광주지역 온라인 커뮤니티가 뒤집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6일 광주 송정매일시장에서 "왜 광주에만 (복합쇼핑몰이) 없나"라며 내놓은 복합쇼핑몰 유치공약의 후폭풍이 거세다.

"코스트코 이용하려면 대전까지 원정쇼핑을 가야 한다"며 쌓인 불만이 쏟아졌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3040 광주시민들의 '복합쇼핑몰 유치찬성' 의견이 무려 70%를 웃돈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다. "광주에 코스트코가 없다는 건 정말 충격적"이라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광주 시민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사실 대형마트 출점제한 등 독소조항이 들어가며 유통산업발전법이 실효성 없는 규제의 백과사전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명박정부 시절부터였다. 민주당은 일견 억울할 수도 있지만 심상치 않은 여론에 "복합쇼핑몰 유치를 반대한 적 없다"며 꼬리를 내렸다.


호남지역은 스타필드 등 복합쇼핑몰뿐 아니라 코스트코, 이마트 등 창고형 할인점의 불모지다. 이는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인 유통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입김이 센 호남지역 소상인들과 시민단체의 반대를 뚫고 매장을 낼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그나마 대선정국에서 '코스트코 없는 광주'를 만들어낸 '원흉'인 유통산업발전법이 이렇게 주목받는 것은 '뜻밖의 소득'이다. 10여년 동안 유통업계는 "대형마트 출점을 막는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며 규제완화를 호소했다. 소비자들은 "왜 격주로 일요일에 대형 마트를 문 닫게 하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선거철이 아니면 본인들도 가지 않는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정치인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케아와 코스트코가 있는 광명과 코스트코도 없는 광주를 만들어낸 차이는 무엇일까. 당장 눈앞의 표를 좇기보단 지역과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갈등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욕을 먹더라도 합의와 대안을 끌어내는 정치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부디 여든, 야든 전통시장 한가운데에서 복합쇼핑몰 유치를 외칠 수 있는 지금의 절박함과 현실감각을 선거 이후에도 잘 간직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케아 있는' 광명과 '코스트코 없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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