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구지은의 선택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2.03.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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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 구지은 아워홈 전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중소기업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2014.10.10/뉴스1  = 구지은 아워홈 전무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중소기업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2014.10.10/뉴스1


"저는 아직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직 대표이사가 아니라서..."

2014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장에 오너 일가로는 드물게 증인으로 참석한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당시 전무)의 답변이었다. '아직'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당시 국회 출입기자 사이에선 걸핏하면 증인 출석을 회피하는 여타 오너 일가와 달리 용감하게 출석을 감행(?)한 게 화제가 되던 때였다.

구 부회장을 공식석상에 처음 불러낸 백재현 의원은 세간의 평을 이렇게 정리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일찍부터 경영에 뜻을 두고 경력을 쌓아온 재원",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셋째딸", "오너라기보다 CEO에 가깝고 2004년부터 아워홈 경영에 참여해 사실상 지금의 아워홈을 만든 장본인", "삼성가의 손녀이자 LG가의 손녀(할아버지는 구인회LG그룹 창업주, 외할아버지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다. )"



하지만 구 부회장은 '아직 대표이사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로부터 7년 뒤, 구 회장의 셋째딸은 '아직'을 '이제'로 바꿨다.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의 보복운전이 세간에 알려진 것이 계기였다. 지난해 6월 언니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단체급식시장 2위 업체의 수장이 됐다.'장자 승계' 원칙을 고집하는 범LG가(家)의 전통을 깼다는 점에서 구지은 부회장을 선택한 그들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구 전 부회장은 아워홈으로부터 횡령, 배임 혐의로 고소당하는 등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오빠와의 갈등으로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서 보직해임 된 직후인 2015년 7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구지은 부회장은 "그들의 승리, 평소에 일을 모략질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것"이라며 "또 다시 12년 퇴보, 경쟁사와의 갭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구 부회장은 변방에 해당하는 자회사 캘리스코 대표로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아워홈 경영권을 쥔 구본성 전 부회장과 대립하며 절치부심했다.



현재 구 부회장은 대표이사를 맡은 뒤 경영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노조와의 임단협 테이블에 앉더니 일사천리로 합의를 도출했다. 임단협에 오너가 대표자로 참석한 것도, 통상 7~8개월 걸리는 임금협상을 13일만에 마무리한 것도 지난해가 처음일 만큼 이례적이다.

이런 회사에 성과가 안 나오면 이상하다. 특히 2020년 93억원의 사상 첫 적자의 충격은 구 부회장이 취임한 지 반년 만에 흑자로 되돌아설 전망이다. 예상 이익은 250억원이다. 최근엔 해마다 해 온 배당을 하지 않고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워홈은 구본성 전 부회장(38.56%)과 세자매(장녀 구미현 19.28%, 차녀 구명진 19.6%, 삼녀 구지은 20.67%)가 98%의 지분을 가진 사실상 가족회사다. 지난해엔 적자에도 776억원을 배당했다. 구 부회장 입장에선 자기몫 160억원을 포기한 셈이다.

구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취임하면서 약속했던 '구성원이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성과에 대한 최고의 보상을 해주는 회사'로 반드시 만들겠다"며 "저력을 믿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강한 1등으로 올라서자"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매출 목표를 2조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예상 매출 1조7200억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목표지만 구 부회장이 보여준 결단을 고려하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취임 2년차를 맞는 구 부회장에게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의 '아직'은 더 이상 쓸 수 없는 단어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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