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잡아먹히고…'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가족을 만났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1.10.11 18:02
글자크기

[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네번째, 보디] 방치·학대 당하다 구조돼 캐나다로 입양…보호자 "유기견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편집자주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견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렇게 버려진 녀석들에게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고된 시간이 다 견디고, 보디가 크리스마스를 새 가족과 보냈다.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사진=보디 보호자님고된 시간이 다 견디고, 보디가 크리스마스를 새 가족과 보냈다.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사진=보디 보호자님


강아지가 있었다. 털이 하얗고 순하게 생긴 친구였다. 그러나 주인에게 방치돼 있었다. 털은 꾀죄죄했고, 밥도 잘 못 먹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때론 발로 채이거나, 욕을 듣거나, 돌을 맞기도 했다.

그 강아지에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누군가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느 날부터, 강아지가 안타까워 돌보는 이가 생겼다. 그는 항상 강아지에게 다가와 밥과 물을 챙겨주고 사랑으로 보살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가족이 생겼다




예전 주인에게 방치, 학대 당했을 때 보디 모습./사진=보디 보호자님예전 주인에게 방치, 학대 당했을 때 보디 모습./사진=보디 보호자님
돌봐주던 이는 강아지를 구조했다. 그리고 새 가족을 만날 때까지 임시로 강아지를 보호해주는 이도 있었다. 강아지는 처음으로 따뜻한 집에서 밥을 먹었다.

임보자는 강아지가 아프지 말라고 예방접종도 해주고, 함께 산책하는 법도 알려줬다. 방치가 아닌 보호의 시간이 이어졌다. 강아지에게도.

그리고 강아지에게도 새 가족이 생기게 됐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가족이,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한 거였다. 코로나19로 이동 봉사자를 찾지 못해 오랜 기다림이 이어졌다.


두근두근, 처음 새 가족과 마주하는 순간./사진=보디 보호자님두근두근, 처음 새 가족과 마주하는 순간./사진=보디 보호자님
지난해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강아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잘 도착해 새 가족의 품에 안겼다. 긴 비행이라 걱정했으나, 강아지는 아주 씩씩하고 여유 있게 켄넬 안에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파이팅 넘치게 눈밭을 뛰어다녔다. 소변도 시원하게 봤다. 계속 눈 쌓인 곳으로 걸으려는 걸 보니, 느낌이 신기하고 좋은 모양이었다. 강아지에겐 '보디'라는 이름도 생겼다.



엄마는 잡아먹히고…'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보디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 포근한 집에 들어가 엉덩이를 걸터 앉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치아 관리를 위한 간식도 냠냠 먹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던 보디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따뜻한 '가족'이었다.

활동적이고, 공원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평범한 강아지
보호자와 산책할 땐 이렇게 활짝 웃는다. 유기견이었든 학대당했든 방치됐었든 그건 다 같다./사진=보디 보호자님보호자와 산책할 땐 이렇게 활짝 웃는다. 유기견이었든 학대당했든 방치됐었든 그건 다 같다./사진=보디 보호자님
방치되고 학대당했었던 강아지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침형 인간인 아빠와 새벽 6시에 산책을 하고 온다. 무척 활동적이어서 공원에 가서 뛰어노는 걸 제일 좋아한다. 돌아오면 창 밖 구경도 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엄마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임보해준 누나가 캐나다에 선물로 보내준 예쁜 옷도 입고, 덩치 큰 동생들과 눈밭에서 뛰어놀기도 한다.
생일 축하해, 보디 ! /사진=보디 보호자님생일 축하해, 보디 ! /사진=보디 보호자님
올해 1월 2일은 막 한 살이 된 보디의 생일이었다. 엄마, 아빠와 집에서 만든 강아지용 케이크에 초 하나를 꽂고 생일 축하를 했다. "사랑해, 보디"라는 축하도 받았다.



보디의 엄마 보호자는 "캐나다에 처음 와서 특별히 적응 기간도 없었을만큼, 힘든 점은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큰 개들을 본 경험이 없어서 기다려주고, 학대당한 기억 때문에 나이가 좀 있는 동양인 남자를 보면 으르렁거리는 정도였다. 보디의 행동 패턴을 알기에 조심하고, 훈련도 계속 시키며 늘 조심하고 있다.
잘 때의 흰 좁쌀이 우리 똘이랑 닮았다, 너./사진=보디 보호자님잘 때의 흰 좁쌀이 우리 똘이랑 닮았다, 너./사진=보디 보호자님
그러면서 그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며 다른 유기동물들을 위한 바람을 전했다.

"보디가 떠난 자리에 새 강아지가 와서 또 잡아먹혔단 소식을 들었어요. 먹먹한 마음입니다. 하루빨리 유기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고, 비윤리적인 개고기 섭취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보디 이야기 읽으시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뜻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햇살만 오래도록 너와 가족들에게 비추기를./사진=보디 보호자님햇살만 오래도록 너와 가족들에게 비추기를./사진=보디 보호자님
그리고 이제는 꽃길만 걷기를./사진=보디 보호자님그리고 이제는 꽃길만 걷기를./사진=보디 보호자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