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눈덩이로 키운 '3재(災)'로 크게 수요예측 실패, G2(미국·중국) 갈등, 이상기후를 꼽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수요예측 실패는 최근 사태를 낳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부품업체의 주문이 줄자 반도체 제조업체도 차량용 생산량을 축소했는데 백신 개발과 초저금리 정책을 발판으로 차량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증설 나서도 생산까지 최소 수개월
생산품목을 조정한 뒤 수율을 끌어올리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 제조사에서는 이 기간만큼 매출 손실 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생산품목을 조정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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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공급부족 사태로 차량용 제품 가격이 10~20% 오른다고 해서 다시 차량용 라인을 확대 가동했다가 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지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수익성 측면에서도 이미 수요가 충분한 스마트폰용 반도체가 더 나은 상황에서 생산품목을 바꾸는 것은 모험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급부족 사태가 올 하반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트럼프 나비효과…"반도체 없이 車 못 만들어"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또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MIC의 수요를 가장 많이 떠안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가 모바일·서버용 반도체에 생산여력을 집중하면서 완성차업체들이 각국 정부까지 동원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요청해도 촘촘히 짜인 연간 생산계획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요즘 차량 1대에 평균 200~3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며 "자동차 생산원가에서 반도체 원가 비중은 2% 정도에 그치지만 엔진 컨트롤이나 디스플레이의 정보 표시처럼 차량 내 전자시스템의 역할이 핵심 기능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반도체가 없으면 차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美폭설·日지진 여파…재가동까지 3개월 걸릴 수도
지난 13일에는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 3위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주력 생산기지 이바라키공장이 가동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르네사스 공장 재가동까지 적어도 한두달이 걸릴 것으로 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동을 멈춘 르네사스 나카공장은 재가동까지 3개월이 걸렸다.
시장조사업체 옴니아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올 1분기에만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당초 예상보다 100만대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