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1000건 뚝딱 만든 법 '불량·폐기처분'…남는 게 없다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권혜민 기자 2021.01.05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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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입법공장' 국회의 민낯]<1>-②21대 '4만건' 폭증 전망…인력난·시간에 쫓겨 건당 10분대 부실심사…반영·가결률도 뚝뚝

月 1000건 뚝딱 만든 법 '불량·폐기처분'…남는 게 없다


21대 국회가 ‘역대급 입법공장’이라는 불명예 수식어를 예약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각종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최악의 입법 성적표를 받은 20대 국회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양적 경쟁에 골몰한 입법권 남용은 과잉 규제, 졸속 입법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입법 기능의 질적 저하를 가져와 국회 본연의 역할과 위상 위축을 자초한다는 지적이다.

‘역대 최다’ 발의… 4년간 ‘4만 건’ 육박하나




月 1000건 뚝딱 만든 법 '불량·폐기처분'…남는 게 없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7개월(5월30일~12월31일) 동안 제출된 법안은 총 6957건으로 집계됐다. 20대 국회가 같은 기간 4698건 제출한 것과 비교하면 48% 늘었다.



발의 주체별로 보면 의원 법안이 대부분이다. 의원 발의가 6653건(의원 6463건, 위원장 190건)으로 전체의 96%를 차지한다. 나머지 4%는 정부 제출로 304건이다.

정부 발의가 28건 줄어든 반면, 의원 발의는 2287건 늘었다. 20대보다 의원 한 명당 7.6건씩 더 발의했다.

21대 제출 법안 중 1310건이 본회의 가결, 대안 및 수정안으로 법률에 반영됐다. 반영률이 18.8%로 20대(14.3%)보다 4.5%포인트 높아졌다. 국회는 반영률 상승을 고무적인 성과로 보고 있으나, 특정 현안에 치중된 '복사 입법' 사례가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반영률 상승이 얼핏 고무적 성과로 보여 지지만, 특정 현안에 치중된 ‘복사 입법’ 사례가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복사 입법은 이미 발의된 법안 중 극히 일부 내용만 바꿔 재발의하는 것을 말한다.


과다 발의 추세가 이어지면 21대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법안을 쏟아낼 전망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1대의 법안 발의 건수가 4만 건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했다. 임기 4년간 매일 새로운 법안이 27건씩 쏟아지고, 의원 한 명이 평균 130건 이상을 발의하는 셈이다.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은 “양적 경쟁을 보여주는 과다 발의는 국회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까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지난해 9월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2020.9.24/뉴스1(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지난해 9월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2020.9.24/뉴스1
17대부터 발의 ‘폭증’, 갈수록 낮아지는 ‘반영률’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입법 주도권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온 결과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법안 발의가 폭증하면서, 국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한 지 오래다. 아예 심사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민주화 이전인 1~12대 국회에서 접수된 법안은 4563건이며, 13~20대 국회는 6만9663건에 달한다. 13대 938건, 14대 902건, 15대 1951건, 16대 2507건, 17대 7489건, 18대 1만3913건, 19대 1만7822건, 20대 2만4141건 등이다. 법안 발의가 폭증한 기점인 17대에만 1~12대보다 3000건에 가까운 법안이 더 발의됐다.



법안 폭증 여파로 법안 반영률은 떨어지고 있다. 17대 50.3%(3766건), 18대 44.4%(6178건), 19대 7429건(41.7%), 20대 8799건(36.4%)를 기록했다. 20대에서 반영되지 못한 법안은 1만5342건으로, 10건 중 6건에 해당한다. 20대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이유 중 하나다. 가결률도 하락 추세다. 17대 25.5%, 18대 16.9%, 19대 15.7%, 20대 13.2%로 떨어졌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법제사법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9개 상임위원회가 열린 지난해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가 상임위 참석 부처 관계자들로 붐비고 있다. 2020.07.29. mangusta@newsis.com[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법제사법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9개 상임위원회가 열린 지난해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가 상임위 참석 부처 관계자들로 붐비고 있다. 2020.07.29. [email protected]
'졸속·부실’ 입법 초래… 20대, ‘건당 13분’ 심사 불과
과다 발의는 졸속·부실 심사 문제를 야기한다. 폭증하는 법안을 제한된 입법 인력과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개별 법안 심사에 투입되는 입법 역량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쟁점 법안이 아니면 속전속결로 처리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다.
18대를 기점으로 법안심사소위원회 개최 일수와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발의 건수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위에 상정되는 법안을 기준으로 한, 법안 한 건당 평균 심사시간 통계를 보면 이런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17대 23분, 18대 19분, 19대 18분, 20대 13분으로 계속 줄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의 건수보다 법안을 만드는 절차가 부실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부실 심사와 축조심사 생략으로 법안 앞뒤가 상충 되는 등 부실 법안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발의 건수를 일종의 성적표라고 생각하니 쓸데없는 비용과 규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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