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수사심의위 보니 '반삼성' 인사도 다수…"일방논의 없었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김태은 기자 2020.06.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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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수사심의위 보니 '반삼성' 인사도 다수…"일방논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결정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에 친(親)삼성 인사가 참여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14명의 수사심의위원(이하 위원) 중에는 평소 삼성에 비판적인 인사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복수의 위원들은 친삼성 인사로 지목된 김모 교수가 회의를 주도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특정인이 주도한 심의가 아니었고 심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해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특정 인사의 영향이 아니라 검찰이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위원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 것이 표결에 참여한 절대 다수 위원들의 불기소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지난 26일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수사심의위 회의에서는 위원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선된 위원장 대행을 제외한 13명이 표결에 참여해 10대 3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가 의결됐다.

삼성 비판적 인사도 수사심의위에 대거 포함
이날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수사심의위 회의에 무작위 추첨을 통해 참여한 위원 중 현직교수인 A위원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내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관련 재판에 대해 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유죄로 인정될 소지가 컸다"고 밝혔다. 개인 성향을 분류하면 반(反)삼성 인사인 셈이다. 이 위원은 이번 회의에서 양 위원장 대신 위원장 대행을 맡았다.



현직 언론인인 B위원은 법조기자 시절 이 부회장 재판에 대해 유죄를 예단하는 취지의 기사를 수차례 보도하는 등 삼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 중에는 진보 성향 인사도 다수 포함됐다. 종교계 인사인 C위원은 지난해 초 진보인사들이 주축이 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새해맞이 연대모임'의 남측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또다른 종교계 인사인 D위원은 2012년 쌍용자동차 노조 단식농성장을 방문하고 당시 이유일 쌍용차 대표에게 정리해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당부하는 등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변호사인 E위원은 2016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친삼성 인사 문제라면 반삼성 인사도 문제"
삼성 수사심의위 보니 '반삼성' 인사도 다수…"일방논의 없었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특정 위원이 과거 친삼성 성향을 보였다는 점을 들어 수사심의위가 깜깜이 심의를 했다고 비판하지만 법조계에서 비판의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 한 인사는 "과거 친삼성 발언을 한 인사가 수사심의위에 포함된 게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면 삼성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 인사가 포함된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이른바 친삼성 인사의 의견을 굳이 문제 삼아 배제한다고 해도 10대 3의 결과를 뒤집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심의위 결과가 부당하다는 주장은 14명의 위원들을 싸잡아 모독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기소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수사심의위 활동 등이 존중돼야 한다"며 "검찰은 수사심의위 결정 내용을 참고해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특정 위원들의 과거 발언까지 문제 삼아 이번 결정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질서를 무력화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논의 주도한 인사 없어…검찰 무리한 수사에 의문도
9시간 이상 걸린 이번 심의에서는 검찰이 범죄 혐의라고 제시한 객관적 사실에 대해 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주장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 조작 증거에 대해 "회사 경영을 위해 회의도 하고 대책 문건을 만든 것 자체를 위법으로 본다면 누가 회사를 운영할 수 있고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 위원은 전했다.

또 다른 위원은 "위법 사항에 이르는 과정까지 위법 사항으로 볼 수 있다고 제시한 검찰의 주장에 대해 '죄형법정주의를 벗어나 이 부회장을 처벌하기 위해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인 위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은 특정 위원 한 사람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논의에 참여했던 다수 심의위원 사이에서 비교적 고루 개진됐다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친삼성 논란의 당사자인 김모 교수는 자본시장법 관련 자료를 복사해서 위원들에게 나눠달라는 다른 위원들의 요청을 받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를 주도하거나 다른 위원들을 설득하려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4년 재판 정상적이냐"…檢 최종판단 늦어질 수도
삼성 수사심의위 보니 '반삼성' 인사도 다수…"일방논의 없었다"
위원들은 특히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장기간 재판을 받는 것은 국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 부회장이) 4년간 재판을 받아오고 있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이냐"며 첨단 글로벌 기술로 세계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가 이제는 오너(이재용)의 상황 때문에 예전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수사팀을 포함한 검찰 내부에서는 '불기소 권고' 이후 행보에 대해 장고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앞서 열렸던 수사심의위에서는 결정 후 1주일 안에 검찰이 수사심의위 결정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며 "이번에는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1주일 이상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불기소 권고는 한국 여론이 이 부회장의 유죄 여부와 검찰의 정당성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풍향계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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