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독박육아' 시작…"주말은 지옥이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2020.01.05 08:00
글자크기

연년생 아이를 두게 된 아빠의 육아 분투기①

아들 1호와 2호의 첫 대면 순간. 1호는 '누구냐 넌'이란 표정으로 2호를 바라봤다./사진=박경담 기자아들 1호와 2호의 첫 대면 순간. 1호는 '누구냐 넌'이란 표정으로 2호를 바라봤다./사진=박경담 기자


아내가 사라졌다
지난달 3일 첫눈과 함께 아들 2호가 태어났다. 탄생의 기쁨, 제왕절개 마취로 꼼짝 못하는 아내를 향한 고마움·미안함 모두 컸다. 이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졸지에 1호가 된 첫째 아들과 나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예고된 일이었지만 예상을 무참하게 깨는 거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 아내가 병원에 있는 5박 6일 동안 1호는 나와 단둘이 동거해야 했다. 1호를 낳은 지 백일쯤 지났을까. 회사 후배에게 '아내가 사라졌다'는 제목의 팩션(팩트+픽션)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 있었다. 아내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울 수 있을지 떠올리던 때였다. 당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얘기는 팩션의 소재가 아닌 팩트가 됐다.



1호와의 동거 준비는 나름 치밀했다. 빌릴 수 있는 건 모두 빌리기로 했다. 우선 퇴근 후 10분 거리에 사는 부모님을 빌리기로 했다. 새벽 식당 장사 때문에 초저녁에 주무시는 1호 할머니·할아버지의 수면시간을 빼앗았다.

돈의 힘도 빌렸다. 1호가 어린이집 하원 후 뛰어놀 수 있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키즈카페 3곳을 사전답사했다. 산후조리원은 일부러 키즈카페 건물로 예약했다. 다른 키즈카페에선 10만원짜리 정기권을 끊었다. 또 토요일마다 하는 놀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3개월 수강료로 44만원을 썼다. 집에는 1호를 홀릴 수 있는 타요 장난감 시리즈도 마련해놨다.



할머니는 육아 치트키·스펙
타요 장난감 시리즈는 1호를 단단히 홀리며 아내의 부재를 완벽히 메워줬다./사진=박경담 기자타요 장난감 시리즈는 1호를 단단히 홀리며 아내의 부재를 완벽히 메워줬다./사진=박경담 기자
가장 먼저 빌린 건 할머니들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곧장 1호 할머니 댁을 찾았다. 한숨 돌렸다. 오후 7시 2호 면회시간에 맞춰 1호와 함께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내 간호를 위해 전남 담양에서 올라오신 장모님이 우리를 맞았다. 창문 너머로 2호를 처음 본 1호가 '누구냐, 넌'이라는 표정을 지은 듯했다.

1호와의 저녁은 장모님 손을 빌렸다. 일과 중 최대 난관인 저녁 식사를 무사히 마쳤다. 역시 할머니는 육아 '치트키'였다. 또 할머니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시간, 사회생활 등 여러 방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스펙'이었다. 거꾸로 보면 할머니에 의존하지 않는 육아가 아직 멀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를 불렀다. 늘 돌아오던 엄마의 답이 없자 1호는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이내 거실에서 타요 장난감을 발견하더니 빠져나오질 못했다. 타요는 엄마의 부재를 메웠다. 1호는 목욕을 마치고 열시 반쯤 잠들었다. 맥주 한 캔 마실 여유까지 생겼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2호 탄생 이튿날 저녁부터 아내 면회가 가능했다. 1호는 생이별 34시간 만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배를 칼로 쨌는지 알 길 없는 1호는 자꾸만 엄마 품을 찾았다. 그래도 1호는 엄마와 헤어질 때는 21개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의연했다. 기특했다. 평일 동안 일을 마치고 1호 할머니 댁에 들렀다 아내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코스가 이어졌다.

기다리던 주말, 동시에 오지 않았으면 했던 주말
토요일 아들 1호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주방 모습. 아들 1호가 속타는 아빠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집안을 휘젓고 있다./사진=박경담 기자토요일 아들 1호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주방 모습. 아들 1호가 속타는 아빠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집안을 휘젓고 있다./사진=박경담 기자
금요일이 됐다. 저녁 8시30분 1호와 집에 도착했다. 빨랫감과 2호 육아를 위해 주문한 각종 택배가 쌓여있었다. 기저귀 쓰레기통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집안일을 1호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할 것이냐, 아니면 1호와 같이 놀다가 잠든 뒤 할 것이냐. 갈림길에 놓였다.

선택은 제3의 길이었다. TV를 켜지 않고 집안일을 시도했다. 하지만 1호는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는 장난감 동산으로 데려갔다. 힘 한번 쓸 수 없을 만큼 1호의 중력은 강력했다. 결국 집안일은 1호가 잠든 후 시작했다. 맥주는 사치였다. 결로까지 발생한 탓에 집안일은 모든 창문을 열고 잠바를 껴입은 채 했다.

토요일이 왔다. 1호가 태어난 후 주말을 늘 기다렸다. 하루를 온전히 아이와 함께 보낸다는 건 큰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은 가장 오지 않았으면 한 시간이기도 했다. 평일 동안 어린이집이 맡았던 1호의 육아를 감당해야 해서다. 적어도 1호가 깨어 있는 동안 TV를 보고 싶은 마음, 졸린 몸은 깨야만 했다.

아내가 없는 토요일이라 부담은 훨씬 커졌다. 주말 식당 일이 바쁜 1호 할머니에게 SOS를 칠 수도 없었다. 세수, 아침 식사, 놀이 프로그램 수업 참여, 점심 식사, 낮잠, 간식, 저녁 식사, 목욕 등 혼자 해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육아의 절반은 '집안일'이었다
토요일 오후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 모습. 아들 1호를 재우고 정리할 지 3초 고민했지만 잠이 쏟아졌다. 결국 아들 1호에게 뽀로로와 친구들, 꼬마버스 타요를 보여주고 집 정리를 했다./사진=박경담 기자토요일 오후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 모습. 아들 1호를 재우고 정리할 지 3초 고민했지만 잠이 쏟아졌다. 결국 아들 1호에게 뽀로로와 친구들, 꼬마버스 타요를 보여주고 집 정리를 했다./사진=박경담 기자
오전에 새로 신청한 놀이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무사 귀환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최후의 보루 TV를 켰다. 1호는 무섭게 집중했다. 엠씨스퀘어 뺨쳤다. '1호 너가 뭘 좋아할지 몰라' 평소 잘 먹었던 메로구이와 새우요리를 했다. 밥은 햇반으로 내놓았다. 입이 짧은 1호가 정작 먹은 건 장모님이 가져다주신 백김치였다.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 설거지거리로 가득한 주방. 집은 난장판이었다. 전날처럼 1호 낮잠을 재우고 치울지 3초 고민했다. 1호가 자는 동안 같이 눕고 싶다는 수면욕이 솟구쳤다. 1호를 TV 앞에 다시 앉혔다. 1호는 30분 동안 넋 놓고 뽀로로와 친구들, 꼬마버스 타요를 봤다. 1호를 낳기 전 식당에서 아이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부모를 속으로 나무랐는데 이젠 내가 집에서 그러고 있다.

1호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취재원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집에 늦게 들어갈 때면 아내에 미안했다. 미안함의 범위는 딱 1호를 함께 돌보지 못한다는 부분까지였다. 집안일은 육아보다 무게감이 크게 떨어지는 옵션으로 여겼다. 짧은 독박육아 기간도 1호만 잘 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생각은 '불금'과 '즐토'를 거치며 와르르 무너졌다. 육아의 절반은 집안일이었다.

본격 남편 육아장려 TV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1호가 태어난 후 종종 봤다. 방송에선 집에서 아빠가 아이와 새로운 놀이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집은 여지없이 지저분해진다. 하지만 방송은 대개 아빠와 아이의 즐거운 표정까지만 보여준다. 육아와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함께 그려내지 못한다면 이 프로그램명은 '슈퍼맨이 반쪽만 돌아왔다'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