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1970년부터 25년간 2대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술로 우리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1976년 민간기업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임기간 70여개의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수준을 도약시켰다.
구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기술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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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칠 때에도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정신은 19인치 컬러 TV, 공냉식 에어컨, 전자식 VCR, 슬림형 냉장고 등 다수의 국내 최초제품 출시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구 명예회장은 우수 기술인재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당시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82년 그룹 '연구개발상'을 제정해 연구원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구 명예회장은 독일 지멘스, 일본 히타치,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합작 경영을 추진하면서 LG그룹의 '인화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럭키그룹은 두 가지 면에서 합작의 명분을 찾아왔다. 하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럭키그룹의 독특한 기업풍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로 믿고 존중할 줄 아는 조직 문화, 거슬러 올라가면 그룹의 모태가 된 ‘인화(人和)’에 그 뿌리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면서도 고객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현장에 갈 때마다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라. 이것이 혁신이다"라는 말을 항상 잊지 않고 강조했다.
그룹 내부에서는 사내 문서의 결재란에 '고객결재' 칸을 회장 결재 칸 위에 만들고,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고객을 생각하고, 모든 회의에서 고객의 의견을 최고로 존중하겠다는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