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던 축구코치, 10년 만에 IS 수괴로…10년 뒤 그는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19.11.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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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푸는 국제부 기자들]'폭탄조끼 자살' 알 바그다디, 2004년 체포돼 미군 수용소 수감…무함마드 후예 부족서 태어나

말없던 축구코치, 10년 만에 IS 수괴로…10년 뒤 그는


말없던 축구코치, 10년 만에 IS 수괴로…10년 뒤 그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사망했습니다. 100여개 국가 출신 최소 4만명이 넘는 대원을 거느리며 40개국에서 테러를 가해온 IS의 수장 알 바그다디. 그러나 알 바그다디의 과거를 살펴보면 조용하고 내성적인 율법학자, 축구 코치 등 이색적인 이력이 돋보이는데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무시무시한 IS 수괴로 만든 것일까요?

美 교도소 수감생활이 IS 수괴를 만들었다?
2004년 이라크 부카 교도소에 수용됐을 당시 알 바그다디의 머그샷. /사진=위키피디아2004년 이라크 부카 교도소에 수용됐을 당시 알 바그다디의 머그샷. /사진=위키피디아


알 바그다디가 본격적으로 IS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2004년 2월 이라크 남부 부카 교도소에 수용됐을 때인데요. 당시 그는 처남(brother-in-law) 집에 지내고 있을 때였죠. 뉴욕타임스(NYT)는 처남이라고 보도했으나, 브루킹스연구소가 발표한 에세이에 따르면 친구라고도 합니다. 당시 그의 처남은 이라크에 주둔하던 미군에 총격을 가해 수배 대상에 올라있던 인물이었죠. NYT는 처남을 잡으러 왔던 미군이 그를 함께 '거의 실수로' 데려갔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이 수용소 생활이 알 바그다디를 수괴로 만든 계기라고 분석합니다. 악명 높은 부카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미래 IS 지도자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의 사상은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대한 혐오도 깊어졌다는 것이죠. 결국 미국이 사상 최악의 적 우두머리를 제 손으로 키운 셈이라는 아이러니입니다.



이에 대한 반박도 있습니다. 부카 교도소 생활은 알 바그다디를 자극할 '방아쇠'가 됐을 뿐, 이전부터 그는 극단주의적 기질을 보여왔다는 거죠. 실제로 수용소에 수감되기 몇 달 전인 2003년 말 살라피 지하드(이교도를 상대로 한 이슬람의 종교전쟁) 반군에 가담합니다. 2003년은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해죠. 그러나 알 바그다디를 '민간인 수감자'(civilian detainee)로 분류해둔 것을 보면 당시 미군은 알 바그다디가 반군임을 몰랐던 듯 싶습니다.

함께 수감생활을 한 이들도 알 바그다디에게서 극단적인 조짐이 보였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수용소는 십여명의 수감자가 한 텐트에 배정됐는데, 알 바그다디는 자신이 속한 텐트의 리더로 임명됐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텐트 수감자들이 시아파 수감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부추겼고, 이 정도가 심해 시아파 수감자들이 미군에게 수용소를 옮겨달라고 할 정도였죠. 시아파가 없어지자 이제 그의 이상행보는 같은 수니파 동료들에게 옮겨갑니다. 수염 길이부터 일일 기도 횟수까지, 그들이 종교를 섬기는 방식을 일일이 간섭했죠. 한번은 한 수감자가 담배를 피우다가 붙잡히자 그의 손가락 두 개를 자르라고 명령하기도 했답니다.

대학 때는 축구 코치? … 포교 활동의 일환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사진=픽사베이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사진=픽사베이

알 바그다디의 유달리 깊은 종교적 집착은 출생지까지 거슬러갑니다. 그는 1971년 이라크 바그다드 중부의 알 잘람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가정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가 태어난 마을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예들이 사는 바드리 부족이었다는 것이죠. 또한 이들 가족은 가장 강경하고 보수적 이슬람 종파에 속하는 와하비 이슬람 모스크(사원)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안에서 태어난 알 바그다디는 또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러다닐 때, 사원에만 있었다고 해요.

알 바그다디의 심상치 않은 기질은 어린 시절 일화에서도 보여집니다. 평소에는 조용한 그였지만, 본인이 여기기에 이슬람 율법을 어기면 이를 지적하는데 거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이웃 주민이 타투를 했다는 이유로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는데요. 10대에 들어서는 자신의 멘토였던 모스크 사제들을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1991년 20살이 된 바그다디는 바그다드대학교의 샤리아 단과대학에 입학했고, 이후 사담대학교에서 이슬람 경전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까지 얻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바그다드의 한 모스크에서 쿠란(이슬람 경전) 교습을 하기도 했죠. 당시 제자들은 그가 말수가 별로 없고, 내성적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축구팀 코치로도 활약했습니다. 지하드 단체가 과거에 축구를 금기시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인데요. 하지만 평범한 축구팀 코치는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축구팀 단원들에 의하면 그는 항상 연습이 끝나면 와하비 교리가 적힌 리플렛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한 단원은 집에 들고 온 리플렛을 보고 부모님이 불같이 화를 내며 축구팀에서 나오게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알 바그다디가 섬기던 교리가 일반적인 이슬람 종파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축구팀 코치도 포교 활동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도소 석방 이후 IS 수괴되기까지
2004년 말 11개월 만에 부카 교도소에서 석방된 이후 몇 년동안 바그다디의 행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종적이 다시 드러난 때는 2009년인데요. 이라크군이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한 은신처를 급습해 얻은 자료에서 바그다디가 쓰던 가명인 '아부 두아'가 발견되죠. 이듬해 IS의 전신인 '이라크이슬람국가'의 두번째로 높은 지도자가 숨지면서 알 바그다디가 임명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도 이때죠.

당시 이라크이슬람국가는 700명 안팎으로 거의 격파당한 상태였지만, 시리아 내전 발발과 미군의 이라크 철수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죠.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누스라전선'을 결성하며 세력을 키운 바그다디는 2013년 4월 누스라전선과 이라크이슬람국가를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로 통합한다고 밝히죠. 이후 ISIL은 한 달 만에 시리아 북동부의 락까를 점령하고, 1년여 만에 이라크의 두번째로 큰 도시 모술을 점령하는 등 무섭게 성장합니다. 그리고 2014년 7월 모술의 한 모스크에서 칼리프(이슬람 지도자)를 자처하며 이슬람국가(IS)의 창설을 발표했고, 이 모습을 전세계에 공개했습니다.

연설 영상 배포 이후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독일, 터키 등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며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전성기에 달했던 2016년에는 시리아 북부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계곡에 이르는 곳까지 영토를 점령해 수백만명을 통치할 정도였죠.

2014년 자신을 칼리프로 내세운 이슬람국가(IS) 창설을 발표하는 알 바그다디의 모습. /사진=AFP2014년 자신을 칼리프로 내세운 이슬람국가(IS) 창설을 발표하는 알 바그다디의 모습. /사진=AFP
그러나 2017년에 들어서며 연합군의 공격으로 IS는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IS는 모술을 중심으로 점조직으로 운영하며 연명했고, 알 바그다디는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 지역에 있는 은신처에서 지냈죠. 이후 몇 년간 그의 사망 보도는 수차례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육성 성명을 내며 건재함을 드러냈죠.

항상 추격에 쫓기던 알 바그다디는 암살을 두려워해 10년 넘게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IS 주요 간부들을 만날 때도 눈을 가리고 한참 이동시킨 뒤에 면담을 가졌다고 해요. 이후 2019년 3월 IS 마지막 근거지인 바구즈가 쿠르드족 민병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에 의해 함락되고, 지난 4월 250여명이 숨진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 밝히며 부활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던 듯 싶습니다.

지난달 26일 알 바그다디는 시리아 이들리브의 은신처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2시간에 걸친 작전 끝에 지하 터널에서 폭탄조끼를 터뜨려 자신의 두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죽음을 공식 발표하며 "도망가는 내내 훌쩍이고 울고 비명을 질렀다"며 "그는 개처럼,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말했는데요.

미 국방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지만, 어찌 되었던 한때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테러조직의 수장으로서는 실로 비참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IS는 알 바그다디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새 지도자를 선출했다며 미국에 "기뻐하지 말라"고 경고했죠. 과연 IS는 알 바그다디의 죽음으로 이대로 궤멸의 길을 걷게 될까요? 아니면 그의 복수를 꿈꾸며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더 끔찍한 테러를 계획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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