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선종 10주기 김수환 '그대 앞에만 서면~'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9.02.1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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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앞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1898광장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을 찾은 시민들과 수녀가 김 전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9.2.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앞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1898광장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을 찾은 시민들과 수녀가 김 전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9.2.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인이 떠난지 꼭 10년째다. 2009년 10월16일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 얘기다. 10년 전 그날에는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은 추모열기(장례기간 40여만명의 추모객)가 가득했다. 거의 신드롬이었다. 스님부터 목사님까지 그를 애도했고 여야와 진보정당까지 한 목소리를 냈다. 극심한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재로서는 재현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추기경 각막기증이 알려진 뒤 그해 사후 장기 기증 서약자는 3만명을 넘었다.

정치권은 소외 계층을 감싸 안았던 김 추기경의 행적을 기리며 당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불교계(조계종 총무원장)에서는 “이웃의 고통을 대신해 살아오신 평생의 지표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하면서 슬픔을 함께한다"고 했고 개신교(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김 추기경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았다"고 애도를 표했다.



하느님과 약자에게는 한결같았던 그지만 정작 순종의 삶만 살지는 않았다. 그가 18세때의 일이다. 일제가 모든 학교에 ‘조선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천황의 칙유(친히 내리는 말씀)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문제를 냈는데 소년 김수환은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

유학을 앞둔 때여서 학교의 처벌이 관심이었지만 당시 장면 교장은 그를 남들이 보는 데서 한 대 때렸다. 하지만 그뒤 불문에 부치고 일본 유학을 보내면서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했다. 그뒤 스승은 정계에 투신해 2공화국의 총리가 됐고 제자는 가톨릭 추기경으로 영적인 스승이 됐다.



독재에 대해서도 할말은 했다. 1971년 말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 비상대권을 부여하려던 당시 김 추기경은 KBS가 전국에 생중계한 성탄 자정 미사에서 강론 원고에 없던 말을 꺼냈다. “정부와 여당 의원들은 국가보위 특별조치법의 입법이 필요불가결의 것이라고 양심적으로 확신하고 계십니까.” TV를 보다 화들짝 놀란 박 대통령은 생중계를 끊으라고 지시했다. 추기경은 ‘공산주의와 대치하고 있지만 우리의 힘은 참된 민주주의에 있다’는 말도 즉석에서 구두로 첨가(선종 10주기 문집 ‘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구중서 지음))한 뒤였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때도 추모미사를 통해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라고 일갈했다. 경찰이 명동 성당에 진입해 시위 대학생들을 연행하려 할 때는 “먼저 나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인간적인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TV음악프로(열린음악회)에 객석의 일원으로 나왔을때는 관객들과 함께 등대지기를 불렀고 앵콜송으로 무반주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라고 노래(가요 ‘애모’)부르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과 판문각을 오가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일 정도로 격변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그의 제언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직후 그는 “이것이 평화를 위장한 전쟁 준비의 수단이 되거나 권력 정치의 기만전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1994년 임진각에서 발표한 ‘평화통일 선언문’을 통해서는 “통일은 이미 우리 앞에 가까이 와 있다. 참된 평화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울림을 줬다.

말년의 그는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남북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 회복의 정신으로 이땅의 진실된 역사창조에 나선다(김 추기경이 발간한 잡지 ‘창조’의 창간사 중 일부분)면 하늘의 그도 평안한 안식의 잠에 빠져들 것이다.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중략) 당신은 나의 남자요’라는 읊조림과 함께.

* 16일 오후 1시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김수환 추기경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23일까지 서울대교구청 1898광장에서는 사진전도 이어진다. 18일 오후 8시엔 명동대성당에서 기념음악회도 열린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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