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앞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1898광장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을 찾은 시민들과 수녀가 김 전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9.2.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권은 소외 계층을 감싸 안았던 김 추기경의 행적을 기리며 당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불교계(조계종 총무원장)에서는 “이웃의 고통을 대신해 살아오신 평생의 지표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하면서 슬픔을 함께한다"고 했고 개신교(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김 추기경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았다"고 애도를 표했다.
유학을 앞둔 때여서 학교의 처벌이 관심이었지만 당시 장면 교장은 그를 남들이 보는 데서 한 대 때렸다. 하지만 그뒤 불문에 부치고 일본 유학을 보내면서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했다. 그뒤 스승은 정계에 투신해 2공화국의 총리가 됐고 제자는 가톨릭 추기경으로 영적인 스승이 됐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때도 추모미사를 통해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라고 일갈했다. 경찰이 명동 성당에 진입해 시위 대학생들을 연행하려 할 때는 “먼저 나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인간적인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TV음악프로(열린음악회)에 객석의 일원으로 나왔을때는 관객들과 함께 등대지기를 불렀고 앵콜송으로 무반주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라고 노래(가요 ‘애모’)부르며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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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정상이 판문점과 판문각을 오가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일 정도로 격변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그의 제언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직후 그는 “이것이 평화를 위장한 전쟁 준비의 수단이 되거나 권력 정치의 기만전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1994년 임진각에서 발표한 ‘평화통일 선언문’을 통해서는 “통일은 이미 우리 앞에 가까이 와 있다. 참된 평화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울림을 줬다.
말년의 그는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남북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 회복의 정신으로 이땅의 진실된 역사창조에 나선다(김 추기경이 발간한 잡지 ‘창조’의 창간사 중 일부분)면 하늘의 그도 평안한 안식의 잠에 빠져들 것이다.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중략) 당신은 나의 남자요’라는 읊조림과 함께.
* 16일 오후 1시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김수환 추기경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23일까지 서울대교구청 1898광장에서는 사진전도 이어진다. 18일 오후 8시엔 명동대성당에서 기념음악회도 열린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