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 통한 애국…유한양행 '유일한정신' 계승돼야"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황희정 기자 2019.01.03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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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조카' 유승흠 의료지원재단 이사장 '유일한 전기' 발간…독립운동·자동차 산업 진출 등 비사도

유일한의 전기 ‘유일한 정신의 행로’(유일한 연구원 펴냄)을 쓴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사진=황희정 기자유일한의 전기 ‘유일한 정신의 행로’(유일한 연구원 펴냄)을 쓴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사진=황희정 기자


“큰아버지 유일한은 삶의 순위를 국가, 교육에 이어 기업을 세 번째라고 했어요. 가정은 네 번째였죠.”

유한양행 (71,500원 ▼1,000 -1.38%)과 학교재단 유한재단을 설립한 기업가이자 교육자 유일한(1895∼1971)에 대해 가족 관점에서 바라본 전기가 나왔다.

유일한의 조카인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연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내놓은 백부 유일한의 전기 ‘유일한 정신의 행로’(유일한 연구원)가 바로 그 책이다.



유 이사장은 회사 차원에서 내놓은 것도 있고 어린이 위인전 형태의 여러 전기가 있지만 유일한의 부친(유기연 선생)과 동생들에 대한 기록, 자식들을 두루 다뤄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두루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일한은 기업 경영을 통해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애국자였고 그가 그리던 꿈은 교육가였지만 그 꿈은 기업을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항일운동의 모태는 1900년대 초반 항일운동 서북지역 재정책임자를 맡았던 부친 유기연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 유기연은 아홉 살 아들 일한을 미국 유학길에 오르도록 할 정도로 선각자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자신과 친척들이 수십년간 모아왔던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전기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일부 전기에서 미국 출국전 유일한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버지로 소개돼 있는 인물은 유학을 주선한 순회공사 박장현(독립운동가 박용만의 삼촌)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재필과 1920년대부터 행보를 함께 왔던 것(미국에서 설립한 유한주식회사에 서재필을 사장으로 추대)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대목이다. 또 현재도 사용되는 유한양행의 로고가 조각가였던 서재필의 딸(스테파니)이 선물로 준 버느나무 목각 기념선물에서 유래(‘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시원하게 쉴수 있는 사업을 하라’는 의미)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독립운동 방법론을 두고 대립했던 서재필.박용만(무장투쟁론)과 이승만(외교론)의 불편한 관계로 유일한이 사업상 불이익을 받았다고도 유 이사장은 술회했다. 1950년대 자동차 크라이슬러 수입, 조립 등으로 동생(유 이사장의 부친인 유동한) 등과 함께 자동차회사(유한자동차)를 꾸리기도 했지만 이승만 정권 하에서 정치자금 제공과 시발자동차와의 경쟁여부 등을 두고 이견이 오간 끝에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번 전기는 유 이사장이 백부 생존 시에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고, 집안 내력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실제로 유 이사장은 자신이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백부가 가장 좋아했고 유한양행 주식(당시 500주)을 건네준 사실도 소개했다.

스스로 의학자이자 의료행정 전문가인 유 이사장은 학교를 떠난 후 한국의료지원재단을 통해 의료비가 없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성금을 모아 지원하는 사업을 꾸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을지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진 유 이사장은 배웅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직접 불을 끄고 문단속을 했다. “백부님은 돈을 허투루 쓰는 걸 그렇게 못마땅해 하셨어요. 내게 주식을 건네면서도 팔아버릴까봐 ‘엿바꿔먹지 말라’고 농담하셨으니까요. 아직도 그 주식은 갖고 있어요.(웃음)”

유 이사장은 “유일한을 이어받는 기업가정신 계승은 기업승계나 사업가를 위한 것이 아닌 미래 사회 구성원으로써 요구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나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책에 대해 김기영 유일한연구원장(연세대 명예교수, 전 광운대 총장)은 “유일한 박사는 식민시대의 구조를 파악해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미리 깨닫고 재단을 설립 하는 등 우리나라가 배출한 산업지도자”라고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유일한은 일제 식민 치하에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굴지의 제약회사로 키워냈고 자신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다. 유일한의 기업과 나눔정신은 가족들에게도 이어져 딸인 유재라씨도 1991년 타계하면서 장학사업과 불우청소년 가장돕기에 써 달라며 전 재산인 200억여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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