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건축은 '분수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머니투데이 남양주(경기)=김유진 기자 2016.10.1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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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현장을 가다] <7-1>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최기영

편집자주 일상에 흩뿌려진 삶의 방식들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유산'이 됩니다. 무형문화유산은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즉 형태가 없는 유산이지요. 눈으로만 봐야 하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다 사용해야만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답니다. 그만큼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지만 진짜 우리의 문화, 즉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져 온 오랜 이야기는 유형유산보다는 무형유산에 훨씬 더 짙게 배어있습니다. 두 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축된 이야기가 담긴 삶의 터전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보유자 최기영 대목장(71). 그는 "전통 건축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분수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최기영 대목장 전수관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보유자 최기영 대목장(71). 그는 "전통 건축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분수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최기영 대목장 전수관


"컴컴한 건 음(陰)이고, 환한 건 양(陽)이야.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것이 '분수(分數)'를 아는 삶이지. 자기 가진 그대로 사는 삶, 얼마나 자연스럽고 좋아."

최기영 대목장(71)을 만나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고집'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그 또한 자신의 목수 인생을 담은 책 제목을 '목수고집'이라 지었으니, 최 대목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집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그의 고집이 발휘되는 곳은 '전통 건축'이며, 그의 고집 끝에 고통스럽게 탄생한 건물들은 이 땅 위에 굳게 뿌리내려 천 년을 가는 집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먹고 살기 위해 목수의 길에 들어선 최 대목장이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대목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대목장은 무형문화재 가운데 인기 최고"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힘들게 명맥을 이어가는 다른 무형문화재 기예능 종목과 달리,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그의 전수관은 웅장했다. 굽이치는 나무 옹이들이 솔내음을 뿜어내는 그의 집무실은 그 자체로 한옥 건축의 매력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의식주에서 제일가는 것이 대목장이야. 일단 커. 범위가 큰 '종합 건축'이라는 얘기지. 대형 공사다 보니 공사 인원도 많고, 생계유지도 충분히 돼. 그리고 무엇보다 수요가 많아."

고려 말부터 조선까지 대목장은 종1품까지 올라갈 수 있는 중인들이 해 왔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최 대목장의 할아버지였다. 서울로 들어서는 최고의 관문이자, 2008년 화재로 불타 전 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숭례문을 건축한 한성부 판사 최유경이다.

"세종때 한성판연으로 계시면서 숭례문, 전주 풍납문을 건축하셨지. 아마 나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 국민학교를 다니면서도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이어졌지."


그는 전통건축이 '분수에 맞는 삶'을 알려주는 생활 양식이라고 강조했다. 부지, 건축물의 구조, 기둥의 크기와 공간, 가구까지. 모든 것이 맞아 조화를 이뤄야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되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눈으로 그저 보는 것은 '자연의 현상'이지만 스스로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느끼며 사는 것은 '내 마음'이야. 삶의 인과응보, 우주의 질서가 공평하다는 것을 전통 건축 속에 살면서 깨달을 수 있어. 그게 한옥의 '맛과 멋'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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