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한국戰' 담았던 필리핀 화폐도안 바꿨다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5.11.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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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발행된 500페소 신권에 한국 관련표현 삭제…과거 지원국에서 수혜국으로 바뀐 상전벽해 현실 반영됐다는 해석도

필리핀 500페소 지폐 구권(좌), 신권(우). /사진제공=한국은행필리핀 500페소 지폐 구권(좌), 신권(우). /사진제공=한국은행


필리핀이 시중에 30년간 유통시켰던 500페소(한화 약 1만5000원) 화폐도안을 완전히 바꿨다. ’Korea’, ’Seoul’ 등 한국 관련 표현이 있어 양국 우호관계를 상징했던 이 화폐도안이 바뀐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양국의 뒤바뀐 경제위상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0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필리핀 중앙은행은 1987년 발행된 500페소 구권 화폐를 올해 말까지만 사용토록 했다. 당초 2013년까지가 사용기한이었으나 일몰을 2년 더 연장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500페소 구권 화폐를 사용할 수 없다.



500페소 구권 화폐에는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한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2세) 상원의원 초상이 그려져 있다. 화폐 뒷면에는 그가 종군기자로 취재했을 당시 한국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필리핀 군인에게 구걸하는 듯한 모습도 담겨있다. 또한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당시 작성했던 제1기병사단 38선 돌파(1st Cav knives through 38)’라는 제목의 기사도 일부 새겨져 있다.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현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아버지다. 야권 지도자로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대항하다 암살 당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2013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500페소 구권 지폐를 꺼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아버지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2010년부터 발행된 신권 화폐는 인물과 배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면에는 베니그노 아키노와 그의 부인이자 전직 대통령을 역임한 코라손 아키노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1986년 ESDA 민주항쟁 모습도 담겨있다. 후면은 필리핀 희귀 조류인 파란목앵무새와 프린세사 지하강 국립공원 모습으로 대체됐다.

이에 대해 최근 양국관계가 급변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유통기한을 고려할 때 화폐도안을 바꿀때도 됐지만 이처럼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의견도 나온다.


필리핀은 전후 19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좋았다. 196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은 155달러, 필리핀은 257달러였다. 그러나 필리핀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노동인구에도 불구하고 마르코스 독재정권 하에서 정격유착에 따른 경제구조 왜곡으로 70년대부터 더딘 성장세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수출 제조업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해 온 한국과 대비된다.

이 결과 양국의 경제력은 역전됐다. IMF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GDP는 2만8338달러로 세계 28위, 필리린의 1인당 GDP는 3037달러로 세계 124위다. 한국은 최근 필리핀에 공적개발원조(ODA) 차원에서 70~80년대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필리핀이 현재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이가 구걸하는 듯한 모습 등 ‘한국이 필리핀의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을 더 이상 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필리핀 500페소 신권은 5년전부터 유통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화폐도안 변경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자료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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