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행 비행기 vs 1962년 독일행 비행기

머니투데이 프놈펜(캄보디아)=이동우 기자 2015.09.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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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갑과 을](르포)캄보디아 근로자 인천행 현장…공항배웅 가족 300여명으로 인산인해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


지난달 30일 캄보디아 출장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찾은 프놈펜 공항.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도 공항 입구에는 3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입국하는 연예인이라도 보기 위해 모여 있는 걸까?' 덩달아 궁금해져 한참동안 사람들과 함께 기다렸지만, 연예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출국장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창밖의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슴에 캄보디아 국기와 함께 나란히 새겨진 태극기. 목에 건 명찰에는 '고용노동부'라는 글씨가 보였습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에 의해 국내 도입이 승인된 외국인 근로자들이었습니다. 4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확인해 보니 이날 총 57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
연예인을 기다리는 줄로만 알았던 공항 밖 인파는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가족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역만리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한 명 당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30명까지 배웅을 나왔습니다. 한 근로자의 어머니라는 참피 마오씨(63)는 "4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해서 너무 걱정된다"며 "건강히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 '피부색이 다르다' '한국말을 못 한다'며 차별과 무시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이지만 자신의 나라에서는 엄연히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던 건 왜일까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외국인 인력을 고용한 4868개소를 점검한 결과 무려 95.4%에 달하는 4644개소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말들은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 사진=이동우 기자
특히 동남아, 소위 못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더합니다. 정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출신 외국인이 약 28%가량 차별당했다고 밝힌 데 반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자의 55%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차별과 무시는 끝내 범죄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만난 캄보디아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의 이런 차가운 현실도 모른 채, 마냥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어를 미리 공부해 기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근로자도 있었습니다. 한국이 추운 나라라고 들었는지,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털목도리를 매고 있는 근로자도 많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트 찬리씨(23)는 소감을 묻자 짧은 영어 단어 "Hope(희망)"으로 답했습니다. 다른 근로자 타에디 페나씨(31)도 "한국 사람들은 부자다. 캄보디아도 한국처럼 잘 살게 되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희망의 나라'를 찾아간다는 이들의 모습. 언뜻 1960년대 독일로 떠났던 우리 광부, 간호사들을 담은 흑백사진 한장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8월30일 캄포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근로자 트 찬리씨(23, 윗줄 오른쪽 끝)가 배웅나온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제공=트 찬리씨지난 8월30일 캄포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근로자 트 찬리씨(23, 윗줄 오른쪽 끝)가 배웅나온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제공=트 찬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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