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배우, 환상의 공간을 만든다

머니투데이 테크M 최현숙 기자 2015.09.1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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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로 진화하는 공연무대

중동에서 연출된 미디어 퍼포먼스 ‘Is There Anybody Out There’는 조명과 무대 세트 없이 영상과 배우만으로 기획한 미디어 퍼포먼스로 크게 호평 받았다.중동에서 연출된 미디어 퍼포먼스 ‘Is There Anybody Out There’는 조명과 무대 세트 없이 영상과 배우만으로 기획한 미디어 퍼포먼스로 크게 호평 받았다.


첨단기술이 공연무대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3D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해 평면적인 무대를 입체적으로 확장하면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건물 외벽이나 빙상장이 무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을 통한 공연무대의 진화다.

3D영상기술, 고흐의 내면을 연기하다
올 상반기 화려한 영상으로 화제가 됐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시작 전 관객이 바라본 무대는 흰 벽에 책상과 의자, 이젤 정도로 소박하다. 그러나 뮤지컬이 시작되면 흰 벽은 곧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우울과 광기에 사로잡힌,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불운한 화가 고흐의 내면은 그의 작품을 재해석한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때로는 무대 전면을 활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대 바닥이 그 역할을 한다.



작은 소품이었던 이젤 위에도 고흐의 내면이 투사된다. 배우의 붓질을 따라 무대에 고흐의 그림이 완성되고, 고흐의 그림에서 추출된 거리와 카페, 침실은 무대 공간을 실제처럼 확장시킨다. 공연 막바지, 아들을 낳은 동생 테오 부부를 위해 고흐가 그린 작품 ‘꽃이 핀 아몬드 나무’가 무대 위에서 활짝 꽃을 피운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고흐의 작품과 그의 인생을 새롭게 인식시킨 영상기술에 보내는 갈채다.

출연배우가 단 2명에 불과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진짜 주인공은 ‘3D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기술’이다. 이 기술은 대상을 스캔해 크기, 모양, 굴곡을 분석한 후 여기에 영상을 정밀하게 비춰 오브제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3D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공연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제가 됐다. 무대 안 흰 벽은 공연이 시작되면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3D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공연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제가 됐다. 무대 안 흰 벽은 공연이 시작되면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영상을 담당한 고주원 비주아스트 대표는 “공연의 90% 이상이 프로젝션 매핑을 통한 공간 활용으로 이뤄졌다”며 “22.5m에 달하는 벽면과 무대 바닥은 물론 가방, 캔버스 등 기존에 프로젝션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오브제 매핑을 처음으로 시도했는데, 덕분에 영상에 생명력이 부여됐다”고 말했다.

3D 프로젝션 매핑의 기술이 무대 위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사양 프로젝터가 등장하면서다. 영상은 반드시 평면 스크린에 투사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탈스크린화’가 가속화됐고, 이후 다양한 객체와 사물에 프로젝션 투사를 시도하면서 매핑 기술도 발전했다. 최근에는 굴곡, 요철, 질감,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의 형태와 쓰임새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공연에 활용하려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주아스트가 광화문광장에서 시도한 ‘세종대왕 동상 프로젝션 매핑’ 공연을 보면, 프로젝터 설치 위치에 따라 세종대왕 동상의 팔 아래쪽에 영상이 맺히기도 하고 반대쪽에 맺히기도 한다. 프로젝터의 실제 설치 위치와 거리, 각도 등이 영상 제작에 있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동상의 제 위치에 영상이 맺힐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관객의 위치에 따라 동상과 후면스크린의 거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시야 각도에 있다. 어떤 이에게는 정확하게 연동되는 듯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간격이 느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차원 공간에 영상을 매핑하고 사전에 제작한 영상물이 실제 투사되기 전까지 정밀하게 시뮬레이션이 이뤄져야 한다. 즉, 3D 프로젝션 매핑 기술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프로젝션과 조명, 객석에 대한 이해, 영상지식 등이 융합돼야 비로소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고 대표는 “그동안 무대조명을 하는 사람은 영상을 모르고, 영상을 잘 아는 사람은 무대조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며 “2~3년 새 기술과 장비를 이해하는 기획자와 연출가가 증가하면서 이를 공연에 활용하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아우디 A6 런칭쇼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아우디 A6 런칭쇼
기술력의 향상과 함께 이를 시연하는 무대도 공연장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6월 아우디 A6 런칭 행사가 열린 코엑스 D홀은 프로젝션 매핑 영상으로 채워졌다. 4차원 도시를 힘차게 달리다 한 순간 도시가 별빛처럼 부서지며 쏟아지는 광경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등장한 아우디 A6.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은 아우디 A6를 특별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영상을 맡은 송상윤 아텍랩 대표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하면 아이스경기장의 빙판을 불길로 덮을 수도 있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현실에 구사할 수도 있다”며 “기술의 발전으로 상상력을 퍼포먼스로 연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홀로그램, 무대 허공까지 지배하다
공연기술의 진화는 무대 속 허공도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허공은 인류가 연극이라는 공연형태를 창안해 낸 이래 단 한 번도 인간이 지배하지 못했던 공간이다.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대형 세트와 각종 장치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연기자들을 압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은 창작자들이 무대의 허공을 자유자재로 입체화시키며 공연장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 무대에 오른 공연 ‘카르마’는 거대한 쇠사슬과 돌이 입체적으로 날아다니며 관객들이 3D 영화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법 같은 무대의 비밀은 홀로그램 기술에 있다.

기존 45도 경사를 둔 포일(Foil) 방식의 홀로그램은 공간과 설치조건의 제약으로 가변성을 중시하는 무대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영상의 직접투사가 가능한 네트(Net) 방식의 홀로그램 매질이 개발되면서 입체적인 무대 연출이 가능해졌다. 또 연기자의 몸짓과 결합해 새로운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 다양한 퍼포먼스를 추구할 수 있다.

3D 프로젝션 매핑 기술이나 홀로그램 기술의 발전은 국내 창작공연의 해외 수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언어의 장벽 해결과 무대장치의 간소화에 따른 비용 절감이 그 이유다. 영상은 시각언어다. 때문에 무용이나 퍼포먼스처럼 말이 필요 없는 ‘넌버벌(non-verbal)’ 공연과 더 잘 어울린다. 또 영상의 비중이 높은 공연일수록 무대가 간소화되고 투입인원과 비용도 줄어든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션은 아직 조명의 밝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홀로그램 매질 역시 투명성과 밝기의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획과 창의력으로 무장한 퍼포먼스 시도를 통해 공연기술은 빠르게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기사는 테크엠(테크M) 2015년 9월호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매거진과 테크M 웹사이트(www.techm.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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