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최고 명당 '운조루'…7대 비밀 간직

머니투데이 구례(전남)=김유경 기자 2015.06.20 08:26
글자크기

[김유경의 한옥 여행]<7>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

편집자주 지방관광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2010년 이후 매년 150여곳씩 증가해 2014년12월 기준 964곳에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부터 우수 한옥체험숙박시설 인증제인 '한옥스테이'를 도입했다. 관광공사가 선정한 한옥스테이와 명품고택은 총 339곳. 이중에서도 빛나는 한옥스테이를 찾아 한옥여행을 떠나본다.

운조루 큰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솟을대문/사진=김유경기자운조루 큰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솟을대문/사진=김유경기자


지리산, 섬진강, 한려해상을 아우르는 '한섬지 천리길'이 열렸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섬지 천리길 중 지리산둘레길(화엄사~쌍산재~운조루) 구간을 모를 리 없겠지만 운조루에서의 숙박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침에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야생화 트레킹을 하고 오후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남한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雲鳥樓)와 만난다. 운조루를 마주하고 왼쪽으로 새로운 한옥단지가 생겼지만 240년 된 명품고택 운조루에서의 하룻밤과 비교할바 못된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집으로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자형 행랑채, 'ㅗ'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운조루는 일종의 택호로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투숙객이 아니면 운조루는 입장료 1000원을 내야 집 구경을 할 수 있는데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10대손인 유홍수 씨가 들려주는 고택 관련 이야기가 재미있다. 운조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7가지나 된다.

운조루 큰 사랑채 누마루/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큰 사랑채 누마루/사진=김유경 기자
◇ 운조루의 7대 비밀장소= 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바깥마당이 나오고 마당 뒤의 사랑채와 바로 마주하게 된다. 왼쪽에 놓인 것이 큰사랑채이고 오른쪽에 놓인 것이 중간사랑채(귀래정)다. 큰 사랑채 서쪽에 대청 2칸이 있는데, 원래 이 큰사랑채 대청 이름이 운조루다.

사랑채 서쪽 끝에는 누마루가 있는데 한가롭게 머문다는 의미를 가진 '족한정'이다. 누마루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소지만 직접 누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 장소 1호이기도 하다. 여기서 지리산 녹차 한잔 마시며 마을을 바라보면 힐링이 절로 되기 때문이다. 특히 200여 년 된 기둥에 드러난 나무의 결들이 호랑이, 나비 등의 모습처럼 보여 고택의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이 고택에 머문다면 한번쯤은 꼭 누마루에 앉아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사치를 누려봐야 한다.


운조루 안채 2층 다락에서 내려다본 사랑마당 전경/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안채 2층 다락에서 내려다본 사랑마당 전경/사진=김유경 기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여인들의 비밀장소도 직접 올라가보자. 큰사랑채와 중간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문간을 통해 들어가면 지금도 살림채로 사용하는 안채가 나온다. 안마당보다 높게 기단을 쌓은 'ㄷ'자형 평면이 안채의 기본형인데, 오른쪽으로 2층 다락이 그 비밀장소다. 남단 벽에 작은 창이 하나 나있는데 사랑마당을 오가는 남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원통형의 뒤주는 이 집이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던 비밀로 통한다. 세 가마니의 쌀을 담을 수 있는 이 뒤주는 중간사랑채와 큰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헛칸에 있는데, 쌀을 꺼내는 입구에 '他人能解(타인능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달에 한번 씩 쌀을 채워 마을의 굶주리는 모든 이를 위해 항상 개방했다고 한다.

운조루 원통형 뒤주/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원통형 뒤주/사진=김유경 기자
동학, 여순사건, 6.25 전쟁 등 지리산이라는 '큰 산 아래에 산 죄'를 수도 없이 치렀지만 운조루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타인능해' 정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운조루 도움을 받았던 마을 어른들이 '운조루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지켜왔다고 전해진다.

부엌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커다란 가마솥 3개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운조루를 지을때 거북돌이 출토된 곳이라고 한다. 집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이니 명당 기운을 받아갈 만한 곳이 아닐까.

큰사랑채 북쪽으로 나있는 '개구멍'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옛날에는 부부라도 쉽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가 보고 싶을 때면 이 개구멍을 통해 몰래 사랑채를 빠져나가 협문을 거쳐 안채 뒤로 가서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정말 딱 한 사람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트여있다.

서행랑채 끝으로는 가빈터가 있다. 가빈터란 집안 내에 죽은 사람을 모셔 두는 곳을 말하는데 다른 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이라 한번쯤 확인해 볼 만하다. 상을 당하면 3일 후 입관을 하고 이곳에서 최장 3개월 동안 안치했다가 장례를 마치고 산에 묘를 썼다고 한다. 장례 치르기 전 아침, 저녁으로 시신 앞에서 제를 올리던 공간이다. 지금은 창고처럼 쓰이고 있지만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서행랑채 앞에는 '위성유'라는 나무가 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기념으로 받아온 나무라는데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나무다.

운조루 안채. 9대손 종부는 20세에 시집와 63년간 운조루에서 살고 있다. 뒷산에서 직접 녹차를 재배해 상품화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안채. 9대손 종부는 20세에 시집와 63년간 운조루에서 살고 있다. 뒷산에서 직접 녹차를 재배해 상품화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유경 기자
◇ 남한 3대 길지에 터 닦은 운조루… 객손님이 더 잘되는 터?= 전라남도에서 명품고택으로 손꼽히는 5곳 중 2곳이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데 운조루는 최고 명당으로 손꼽힌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집터는 남한 3대 길지로 '금환락지' 형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오래전부터 금귀몰니(金龜沒泥)의 길지로 알려져 왔으며 운조루를 지을 때 거북돌이 출토돼 널리 알려졌다. 거북돌을 넣어 두었던 함의 뚜껑에는 집을 짓기 시작한 해인 1776년에 출토됐다고 적혀 있었다. 이 거북돌은 가보로 내려오다가 30년 전 다른 유물과 함께 도난당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남한 3대 명당이라는데 사실 이 집안에서 고관대작이 나오지는 않았다. 정말 길지가 맞을까 의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운조루는 유이주가 유배를 당하는 불우함을 잊기 위해 대구에서 구례를 찾아와 말년을 은둔할 심산으로 지은 집이다.

운조루 안채. 고택 체험을 위해 실내 욕실을 만드는 등 현대식으로 개조했다./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안채. 고택 체험을 위해 실내 욕실을 만드는 등 현대식으로 개조했다./사진=김유경 기자
그리고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원주민보다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 잘 산다는 것. 지리산 노고단을 뒤로하고 자리한 운조루는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고 들 앞에는 섬진강이 있으며 섬진강 건너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오봉산이 있어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꼽힌다.

문제는 오봉산 오른쪽에 오산이 우뚝 서있는 것. 옛날부터 이곳 주민들은 오봉산을 주인 산이라고 해서 '주산'이라고 불렀고, 오산은 손님 산이라고 해서 '객산'이라고 했는데 객산 봉우리가 주산보다 높아 타지에서 와서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잘 산다는 것.

그래서 과거엔 이 마을 주민들이 객산을 미워했는데 요즘은 오산 때문에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어 좋아한단다. 오산에 오르면 깍아지른 절벽 위에 세운 사성암이 볼거리지만 특히 정상에서 지리산 노고단과 섬진강, 마을 전체를 360도로 내려다볼 수 있어 인기다. 오산은 산 모양이 자라가 엎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자라오(鰲)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운조루에서 숙박 후 아침 일찍 오산에 오를 것을 권한다. 운조루에는 동행랑채 2개, 서행랑채 1개, 중간사랑채 1개, 안채 1개 등 총 5개의 방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놨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최고 명당 '운조루'…7대 비밀 간직
☞'운조루' 숙박팁

▶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 문의 = 061-781-2644, 010-5608-2644
▶ 가격 = 8만~15만원 (4~8명), 신용카드 불가
▶ 체험 프로그램 = 곡전재 안팎에는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널뛰기나 그네 등의 시설이 있다. 아궁이 불 지피기 등 옛 생활체험도 가능.
▶교통 = 용산역에서 구례구역까지 KTX는 하루 4회 운항한다. 새마을호, 무궁화호를 포함하면 총 15회. 이동 시간은 2시간21분~4시간28분. 기차역에서 운조루까지는 택시로 20분소요.
운조루 전경/사진=김유경 기자운조루 전경/사진=김유경 기자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