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 두들마을 전경.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1호인 '석계고택'이 정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오른쪽 옆집이 석계 종손이 현재 살고 있는 석계종택이다./사진=김유경기자
안동 월령교 야경에 취해 지체했다가 밤늦은 시간에 방문하게 된 두들마을은 고요했다. 하룻밤 묵기로 예약한 한옥은 석계종택(두들마을길 79). 석계 이시명(1590∼1674)의 13대 종손 이돈씨와 종부이자 음식디미방보존회 회장인 조귀분씨가 살고 있는 한옥이다.
석계종택에서는 조식을 제공하지 않지만 숙박객이 아닌 친척이 온 것처럼 아침식사까지 차려줬다. 종가음식을 지켜가는 이들의 일상식이 궁금했는데, 손수 만든 요거트로 버무린 샐러드와 부드러운 나물들, 젓갈, 김, 김치 등이 하나하나 모두 맛있어 그릇을 싹싹 비워나갔다. 점심때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 맛보게 될 전통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커졌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400년 가까이 된 두들마을의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전쟁후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준 '영양군 도토리죽'의 주요 식자재였다. /사진=김유경기자
장계향은 퇴계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의 제자 장흥효의 무남독녀다. 19세에 아버지의 제자 이시명에게 시집갔는데 전부인의 아이가 셋이나 되는 재취자리였다. 장계향이 이런 결혼을 받아들인 건 이시명의 집안이 만석꾼의 부자여서가 아니었다.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7년 동안 군량미를 내놓고 난민들을 돌봐줬다는 소문이 영남일대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이시명의 부친인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산을 나눌 때 상속분을 모두 장남에게 양도하고 두들마을로 온 것도 장계향의 생각이었다. 스스로 일을 해서 축적한 재산이 아니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종손 이돈씨는 "장계향 할머니는 군자였고, 성리학의 학문적 본질을 몸소 실천했던 분"이라며 "유산 상속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시아버지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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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빈손으로 두들마을로 들어오기 8~9년 전, 1631년에 도토리나무를 심었다. 도토리로 죽을 쑤어 먹으면 굶주려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실제 1636년 병자호란을 겪은 난민들이 장씨의 도토리죽으로 함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도토리죽은 지금도 그 레시피가 고스란히 전해져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 맛볼 수 있다. 장계향은 후손을 위해 일흔이 넘어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을 집필했다.
음식디미방 음식을 재현한 13대 종부 조귀분씨/사진=김유경 기자
146가지 음식 중 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35%나 된다. 이 가운데 으뜸은 떠먹는 술 '감향주'다. 이 술을 빚는데 한 달 이상 걸리고 유통기한은 한 달 정도로 짧아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술이지만 향이 좋고 달아 소화제에 가깝다. 체험관에서 음식을 맛보려면 사전예약은 필수다. 가격은 3만~5만 원으로 다른 한정식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체험관을 영양군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다. 석계종택에서 로열티를 받을 만도 하지만 오히려 조귀분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당을 받고 일하고 있다. 선대 장계향 할머니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온 듯하다.
석계 종손이 살고 있는 한옥. 오른쪽 두칸이 석계종택 2호방이다. /사진=김유경기자
한국문학 거장으로 불리는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두들마을에 세워진 이문열 작가의 집필공간인 광산문학연구소와 북카페 ‘두들 책사랑’은 또 다른 명소가 됐다.
두들마을에는 △석계종택을 포함해 △이원박고택(두들마을길 80) △병암고택(두들마을길 100) △백천한옥(원리1길 31) 기와집 4채가 한옥스테이(http://hanok.visitkorea.or.kr)로 지정돼 있다.
▶한옥 여행 코스 = 음식디미방체험관→석계고택→정부인장씨유적비→음식디미방 전시관→석천서당→석간정사→유우당→여중군자 장계향예절관→광산문학연구소→북카페 두들책사랑→도사고택→주곡고택
▶교통 = 동서울터미널과 진보터미널을 오가는 직행버스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16회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3시간40분정도. 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안동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진보터미널행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진보터미널에서는 석보행 버스를 타고 석보에서 하차하면 된다. 숙박 예약시 요청하면 진보터미널에서 픽업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