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선교장의 활래정. 1816년에 지어진 정자로 풍류를 즐겼던 조선의 시인묵객들이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머물며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피웠다. /사진=김유경기자
벚꽃 꽃망울이 막 터지기 시작한 4월 초 주말, 강원도 강릉시 '강릉선교장'에선 이른 아침부터 난데없이 고어가 들린다. 수백 년 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고어가 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300년을 훌쩍 넘은 집이라지만 강릉선교장(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한옥스테이 중에서도 명품고택으로 꼽힌다. 특히 조선 왕가의 후손이 살고 있어 더욱 특별한 곳이다.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18대손 이강백 관장 부부가 외별당에 거주하며 전체 선교장을 관리하고 있다.
선교장 둘레길에서 내려다본 강릉선교장 전경 /사진=김유경기자
관동팔경과 경포대를 유람하는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된 행랑채/사진=김유경기자
우물 옆으로 난 대문은 여성 출입문이다. 안을 바로 들여다볼수 없도록 내외벽이 있는 게 특징이다. /사진=김유경기자
선교장을 보고 문화재로 지정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사람은 없겠지만 문화재 지정 이유가 행랑채 사이에 나있는 문 때문이란 걸 눈치 챌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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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해설사는 "선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된 두 가지 이유는 사랑채로 들어오는 문과 안채로 들어오는 문이 분리돼 있고 안채로 들어오는 문에 내외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긴 행랑채에는 같은 문이 두개 나있는데 솟을대문인 왼쪽 문이 남성이 사용하는 문이고, 우물이 앞에 있는 오른쪽 문이 여성이 사용하는 문이다. 특히 여성이 사용하는 문에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내외벽이 있는 게 특징이다.
1703년 선교장 최초로 지어진 안채주옥(왼쪽)과 딸들의 거처로 사용된 동별당(오른쪽)/사진=김유경기자
1815년에 건립된 사랑채 '열화당'도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구한 말 러시아 공사관에서 받은 처마를 덧 달은 것이 인상적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국내 지적도 조사를 하며 머문 집들마다 이런 처마를 선물했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을 의식해 대부분 철거했기 때문에 몇 남지 않은 역사의 현장이다. 열화당은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 중인데, 출판사 열화당도 이내번의 후손들이 설립한 것이다.
1815년에 지어진 선교장 종손의 거처 열화당 /사진=김유경기자
이강백 관장이 거주하고 있는 외별당. 집안의 장자의 거처로 사용돼왔다. /사진=김유경기자
예부터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던 선교장은 지금도 한옥스테이로 개방해 전통문화체험관(본관)을 비롯한 △중사랑채 △연지당 △행랑채 △외별당 △홍예헌 1관 △홍예헌 2관 △초정 △초가 1관 △초가 2관 △서별당 총 10채의 건물(59칸) 32실을 내주고 있다. 본채에 있는 한옥 중 서별당과 초정은 6.25때 소실돼 복원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100년 이상 된 한옥이다. 대부분 실내 욕실이 있으며, 취사가 가능한 곳도 있다.
강릉선교장 홍예헌 2관 실내/사진=김유경기자
효령대군 18대 후손 이강백 관장/사진=김유경기자
가승 전통음식체험관에서는 300년 역사의 가승(家承)음식과 초당두부, 황태구이 등 강릉 향토음식을 아침과 저녁에 맛볼 수 있다. 조식이 7000원으로 저렴하다. 활래정에서는 전통차를 시음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연꽃이 만개했을 때 활래정의 모든 문을 위로 올려놓고 차를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단다. 예약은 필수다.
강릉선교장/사진=김유경기자
▶ 방 선택 방법 = 선교장에는 한옥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총 10채인데, 이중 명품고택은 서별당과 연지당이다. 홍예헌은 손님 또는 가족들이 사용했던 곳으로 한 두 가족이 한 채를 통째로 쓰기에 좋다. 선교장 숙박비는 1박에 7만원부터이고 홍예헌은 25만~30만원.
▶ 주변관광지 = 오죽헌과 참소리·에디슨박물관, 벚꽃축제가 한창인 경포대 일원이 차로 5분 거리 내에 있고,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이 12분 거리에 있다. 안목해변 강릉커피거리도 20여 분이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