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옥,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2015.04.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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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They are not machine(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2001년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다. 30년 전 오빠 전태일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외쳤던 구호는 여동생의 논문 표지를 통해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려졌다. 논문은 그해 영국 워릭대학교의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됐고, 영국과 미국에서 단행본으로 동시 출간됐다. 한국에선 2004년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로 번역됐다.

전태일이 별세했을때 16세였던 전 의원은 봉제공장 보조, 어머니 옥바라지, 노동운동으로 청춘을 보냈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에 홀연히 영국으로 갔다. 89년 6월 항쟁 직후였다.
민주화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는 '국제적 연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해외 노동자들의 초청으로 88년 11월 일본, 89년 4월 독일을 방문했던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 의지를 북돋았다. 두 나라의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이 한국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세계적 차원의 노동자 연대를 꿈꾸기에 이른 것.



꿈은 거창했지만 계획도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우선 6개월 어학연수를 계획하고 주변에서 모아준 50만원으로 노동운동의 발원지 영국행 편도 비행기 표를 끊었다.
6개월 어학연수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노동 분야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수중엔 늘 돈 한푼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의 열의를 눈여겨본 지도교수와 현지 노동운동가, 국내외 종교단체 인사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주고, 장학금을 주선해줬다.

6개월을 생각하고 시작한 공부가 무려 12년. 학·석사에 이어 박사 과정까지 끝마친 뒤 귀국할 때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전 의원에게 청와대 노동비서관 제의가 들어왔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영원한 고향'인 동대문 창신동에서 봉제기술 교육센터, 사회적기업을 운영했다.
2012년 5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할 당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제조업을 살리고 기업생태계를 정상화하려면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프로필]
△대구(62) △러스킨 칼리지 유럽비교노사관계 학사(1993~1995) - 워릭대학교대학원 석사(1995~1997) - 워릭대학교대학원 노동사회학 박사(1997-2001) △성공회대학교 교수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대표 △참신나는옷 대표 △19대 국회의원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11월13일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故 전태일 열사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듣고 있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11월13일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故 전태일 열사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듣고 있다.

[키워드-여공]
논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부제까지 포함한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한국의 여성 노동자들과 1970년대의 민주적 노동운동을 위한 그들의 투쟁("They Are Not Machines"-Korean Women Workers and Their Fight for Democratic Trade Unionism in the 1970s).



전 의원은 유학 도중 한국에 와서 두 차례 현장조사, 79차례 개인 인터뷰, 4번에 걸친 집단토론을 진행한 뒤 이를 분석해 논문을 완성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된 바탕은 어릴 적 자신의 경험이었다. 오빠 못지않게, 그의 말
대로 "장난이 아니게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2013년 8월 한 연구소가 진행한 인터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그만 공장에는 다락이 있었는데, 그 밑에서 어린 소녀들이 고개를 못 들고 구부리고 일해야 했다. 내가 지금도 조그맣지만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 이 키였다. 아마 다락방에서 일한 탓이 아닌가 싶다."



"잔업이 있는 날이면 회사에서 '타이밍'(각성제)을 줬다. 그걸 먹고 새벽 네 시까지 일을 했다. 그렇게 한 열흘 정도 일하면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안 든다. 붕붕 떠서 가는 것 같았다."

"화장실도 하루에 한 번밖에 못 갔다. 두 번 가면 사장님에게 혼나니까 참았다가 쉬는 시간에 몰아서 가는데, 순서를 기다리다가 종이 치면 그냥 돌아와야 했다. 그럼 애들은 일하다가 오줌을 싸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키워드-전태일, 노동운동, 영국행]
'사랑하고 존경하는 큰오빠, 오빠가 죽기 바로 전날 아침, 집을 나서는 오빠를 붙들고 등록금 달라고 조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요.' (한겨레, 동생 순옥이가 전태일 오빠께 드리는 글, 2010.11)



전 의원은 오빠의 분신 후 다니던 야간학교를 그만뒀다. 대신 봉제공장에서 종일 일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함께 일하고 운동하던 동료들은 그가 영국으로 간다고 하자 '사대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영어책을 빼앗아 팽개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영국 공항에선 '국제 테러리스트'로 몰려 밀입국자보호소에 갇혔다. 전태일의 동생이라는 점과 더불어, 편도티켓과 여행용 여권, 사회과학 서적이 문제가 됐다. 그는 "영국도 싫고 공부도 싫어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비행기 값이 없어 독일로 갔다"고 말했다. 7개월 전 독일 금속노조의 초청으로 방문한 인연 하나 믿고 찾아간 그의 사연을 듣고 분개한 독일 노동자들은 한국인 유학생을 통역으로 붙여 그를 영국으로 돌려보냈다. 전 의원은 영국인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며 6개월 어학연수 과정을 끝마쳤다.

[키워드-노동학 박사]
어학연수를 마친 뒤엔 학비 부담이 없는 런던 사우스뱅크 야간 프로그램에 등록해 영국노동사를 2년간 공부했다. 귀국을 준비하는데 학교 선배가 옥스퍼드 러스킨(Ruskin) 칼리지 1년 학위 과정을 추천했다.



러스킨 칼리지는 노동운동사와 정치학으로 유명한 학교다. 전 의원은 문정현 신부가 써준 추천서로 독일 카톨릭단체인 미제리오(Misereor)에 장학금을 신청했다. 이후엔 서류상 착오로 2년치 장학금을 받게 돼 노동사회학과 노사관계 학위를 모두 취득하는 행운도 누렸다.

전 의원은 러스킨 칼리지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노사관계로 유명한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석사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지도교수가 미제리오 재단에 편지를 써 장학금을 받아줬다. 석사를 마친 뒤엔 다시 장학금을 받아 박사 과정을 밟았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이 2014년 10월8일 전북 익산 제3일반사업단지 현장 시찰에 나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동료 의원들과 웃고 있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이 2014년 10월8일 전북 익산 제3일반사업단지 현장 시찰에 나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동료 의원들과 웃고 있다.


[대표법안]
전 의원은 2013년 12월 '도시형소공인지원에관한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도시 소공인을 위한 제도적·법률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법으로 '전순옥법'으로도 불린다. 제정안은 지난해 4월29일 본회를 통과해 오는 5월2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제정안은 구체적으로 도시형소공인에 대한 지원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종합계획에는 숙련기술 활용 및 전수, 인력양성 및 공급, 기술보급·혁신·첨단화, 판로확대, 집적지구 지원 등이 포함돼있다.

전 의원의 국회 소속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다. 의류산업을 '일하기 좋은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택한 상임위다. 그는 "노동운동 차원에선 환노위를 가야겠지만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며 "오빠나 어머니가 국회의원이었으면 환노위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람의 한마디]
"노동하지 않은 것을 노동해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주인이 되는 것이 노동해방이다. 노동 속에서 즐거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사람들-손학규, 김문수]

손학규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해 "전태일 열사가 40년 전 분신하면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한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손 의원은 2010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에 참석했다. 2011년엔 의식불명 상태였던 고 이소선 여사를 찾아 병문안했다.



전 의원은 손 의원에 대해 "1970년대부터 알던 분"이라며 "모든 면을 고루 갖춘 그런 정치인은 탄생하기 쉽지 않다"며 정계 복귀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전 의원은 여당 의원들과도 친분이 깊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은 78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정몽준 전 의원은 2013년 전순옥 의원과 함께 창신동 공장을 찾았다. 전 의원은 이후 한 언론인터뷰에서 "정 의원이 내가 공장을 많이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그런 데 가보고 싶다. 따라가도 되냐'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는 얘기를 듣고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걸 못 봤을 수도 있겠구나. 마음 아파하는 건 매한가지구나'라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얼마전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3월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양천구의 가방소공인 업체 대표들을 만나는 자리에 전의원을 초청하기도 했다.

[요주의!]
전 의원은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KDN으로부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 청탁과 함께 일명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의혹이 제기돼 8일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전 의원은 "경찰이 입법로비 운운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입법로비를 받은 사실도, 받을 이유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주목!]
비례대표인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지역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그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창신동 동대문시장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있다. 전 의원은 동대문 시장 '봉제인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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