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부닥친 베르테르는 한동안 로테의 곁을 떠나지만 감정을 추스르기는커녕 현실의 장벽을 오히려 더 실감하고야 만다. 평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귀족들의 사교모임에서 소외되는 등 치욕적인 수모를 겪었다. 다시 돌아온 베르테르가 로테와 재회하게 됐을 때, 이미 그녀는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로테의 따뜻한 보살핌은 그의 고독감을 더욱 깊게 한다. 베르테르는 모든 고뇌(슬픔으로 번역되긴 하지만 원제인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Leiden'은 슬픔보다 높은 차원의 '비참함'과 '괴로움'을 의미한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야 만다.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사진=20세기폭스코리아(주)
A는 언제나 그녀의 일상에 관심을 가졌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좋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가 A에게서 수많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던 까닭은, 단지 우연처럼 취향이 너무나 잘 들어맞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 되고 싶었던 A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녀를 만족시켜 주는 것 외엔 A의 머릿속엔 딱히 바랄 게 없었다.
주변의 몇몇 여성들은 A에게 말했다. 지나치게 착하기만해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는 섹시함이 없다고. 하지만 A는 그런 밀당이 본인이 생각하는 진짜 사랑의 법칙에 위배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남자와 좋은 사람의 차이가 무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A는 그것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대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 인정해 버린다면 더 비참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베르테르가 느꼈던 현실의 높은 장벽과 다를 바가 없는, 경제적 능력과 그것으로 형성 된 사회 내에서의 신분에 관한 것들이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진실된 사랑의 감정은 확실히 줄 자신이 있다. 사랑의 귀결점이 결혼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결혼을 하자고 하면 과연 당장이라도 진행할 준비가 돼 있는가? 무한대로 샘솟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경제적 여건은 제대로 마련돼 있는가? 그런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을 하기엔, A는 한 달 생계비 등 현실적 고민을 해결하기도 벅찬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그녀 역시 그와 딱히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그에게 그녀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별한 그녀를 특별하지 않은 세상에 끌어내리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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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사진=시네마서비스
A보다 낭만적이진 않지만 현실적 능력을 갖춘 남자와의 연애를 포기 않으면서도 자신과의 감정적 유대감까지 놓지 않으려는 그녀 때문에, A가 자살을 결심하진 않았다. 다만 그의 순정만이 그날 이후 사라졌을 뿐이다. 이렇게 성장해 버린 늙은 베르테르들은 의외로 많다. 몇몇의 여성들은 그들의 실패 원인이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괜한 자격지심이었다고 말한다.
/사진=Ktoine in Flickr
아무리 싱싱한 재료가 있어도 맛있는 레시피가 있어야 비로소 즐길만한 음식이 된다. 많은 남성들의 오류중 하나는, 여성들이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다고 말할 때 '그럴만한 사람에게서'라는 전제가 생략돼 있다는걸 눈치 못 챈다는 거다. '그럴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우선 자리매김하려는 남자들도 많다. 극구 말리고 싶다. 굳이 그녀가 놓치기 싫어하는 '좋은 사람' '좋은 친구'란 존재를 만들어 내어 여성의 소유욕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친구란 존재가 상실된 공간까지 메울 정도의 더 강한 매력이 필요해진다.
후배 A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그가 세상의 모든 베르테르들을 대신해 성공 했으면 한다. 더 이상 많은 남자들이 베르테르가 되길 자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죽지도 못하고 순정만 잃어버린 늙은 베르테르가 되기 싫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