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화에서 공주님들은 무언가의 대가로 동거하거나 결혼한다. 누구를 구했거나, 나라를 되찾아 주거나, 심지어 황금공을 찾아준 대가로 말이다.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 공주는 개구리가 황금 공을 찾아 준 대가로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같이 하겠다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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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요·협박·약취·유인·매매춘 등의 사실이 없음
2) 상호 민·형사상 성인임을 알렸음
3) 임신을 해도 남자 측에 책임을 묻지 않음
4) 사진촬영, 녹음, 동영상 촬영 등의 행위를 일절 하지 않음
5) 일회성 만남을 원칙으로 하고 결혼·약혼 등을 약속한 사실이 없음
6) 성관계 사실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지 않음 등 총 9개 조항이다. ‘이를 어길 시 모든 민·형사 소송에 면책권을 갖고 1억원을 배상한다’는 그럴싸한 문구도 포함됐다.
계약서라고 적힌 서류에 '사인'까지 하고 나면 그럴 듯 해 보인다. '이 서류에 서명만 하면 한 번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코 꿰일 염려는 없겠구나' 생각이 절로 들 법 하다.
실제로 이런 어리석은 남자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친한 지인이 내게 이 서류를 보여주며 계약서가 유효한 지 물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해주자면, 꿈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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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우리나라는 계약 자유의 원칙이 인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계약’, ‘장기매매계약’이 유효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효'다.
쉽게 말해 '누가 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것, 상식선에서 벗어난 것은 계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위 계약서의 경우 다섯 번째 조항을 보면 '일회성 만남'을 원칙으로 하는 성관계가 계약의 대상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비상식적 조건을 넣은 계약서는 그 자체로 무효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성이 임신을 하더라도 남성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부분은 법률에 위반되는 특별계약인 만큼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양육에 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면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니…터무니없다.
물론, 계약서 조항 대부분이 무효라고 해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행위만으로도 '자유의사'로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올 법 하다.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할 때 '자유의사'가 있었더라도, 실제 성관계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그 의사가 이어졌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중도에 여성이 성관계를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다면, 남성이 계약서를 빌미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만약 남성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면, '강간범'이 되는 걸 계약서가 막아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성이 협박·폭행으로 인해 계약서에 사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계약서가 효력을 가질 수 없다.
'뒤 끝' 없는 하룻밤을 꿈꾸는 남성들의 왜곡된 로망이 빚어낸 '성관계표준계약서'. 그런0데 과연 현실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간신히 여성을 유혹하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그 계약서를 들이미는 순간 성공률은 다시 '제로'로 떨어질 것이다. 주변에 이 계약서를 들고 다니는 남자들에게 물어보라, 여성인 필자가 장담한다. 성공 확률 0%다.
【PODCAST- 낭만파괴법】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낭만파괴법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