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말 할 때 옷 벗어"…절도와 강도, 그리고 공갈의 미묘한 차이

딱TV 낭만파괴법 2014.07.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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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법으로 동화 뒤집어 보기…'거위 지기 공주님'

편집자주 그녀들의 앙큼한 딱야동! - ‘야’매변호사와 금융전문가가 색다른 시선으로 ‘동’화를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범죄를 파헤치는 낭만파괴법

"좋게 말할 때 가진 돈 다 내놔"라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겁을 먹은 나는 '좋게 말할 때' 돈을 다 털어줬다. 그렇다면 그는 '강도범'일까, '공갈범'일까?

동화 '거위 지기 공주님'에서 간악한 시녀는 자신이 모시는 공주를 약혼자가 있는 나라로 데려다주는 길에서 공주를 협박해 옷을 바꿔 입고 말을 바꿔 타 공주 행세를 한다. 그리고 왕자의 나라에 도착해서는 약혼자마저 가로챈다.



동화 속에서 시녀는 공주를 때리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이를 악물고 옷을 바꿔입고, 말을 바꿔 타라고 지시했고 지레 겁을 먹은 공주는 순순히 이를 따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녀는 무슨 죄에 해당하는 걸까?

"좋은말 할 때 옷 벗어"…절도와 강도, 그리고 공갈의 미묘한 차이


사람을 찔러서 다치게 해야 강도?



'도둑'과 '강도'의 차이는 무얼까. 흔히 도둑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강도가 된다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강도'란 다른 사람에게서 재산을 뺏는 수단으로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협박, 폭행을 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다. (형법 제333조) 협박이나 폭행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금품을 넘겨준 것도 강도에 해당한다.

도둑이 잡히지 않으려고 반항할 경우에도 '강도'가 될 수 있다. 물건을 훔치고 나가려다 주인에게 들킨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주인이 잡으려 달려들자 도둑이 잡히지 않기 위해 주인을 때린 뒤 도망쳤다면, 강도가 된다. 안 잡히려고 폭행이나 협박을 하면 ‘준강도’라 하고, 강도죄와 같은 형으로 처벌한다. (제335조)

절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을 받는 데 비해, 강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훨씬 강한 처벌을 받는다. 절도범과 강도범은 정말 손찌검 한 번에 달라질 만큼 가볍고도 위험한 차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곱게 자란 공주는 저항할 뜻을 품지도 못한 채 순순히 모든 것을 시녀에게 넘겼다. 그러나 협박으로 물건을 빼앗았으니 이 시녀 역시 '강도'범이다.

거짓말을 하면 '공갈죄'?…그렇다면 '사기죄'는?

일상에서 ‘공갈치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보통 ‘거짓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래서 '공갈죄' 역시 '사기죄'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국어사전에서 '공갈치다'란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대다’라는 의미로 나온다. 공갈죄는 '사기'보다 오히려 '강도'와 공통점이 더 많은 셈이다.
강도의 폭행과 협박은 피해자의 저항을 억압할 정도로 강해야 한다. 만약 폭행과 협박이 저항하지 못할 만큼 위협적이지 않았음에도 지레 겁을 먹은 피해자가 재산을 넘겨줬다면 '공갈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으로 피해자의 의사가 억압됐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피해자의 성별과 나이, 범행장소와 시간 등 범행 당시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상식적으로 판단한다.

이런 미묘한 차이로 징역 3년 이상의 강도죄(형법 제333조)가 되느냐,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공갈죄(형법 제350조)가 되느냐를 결정한다.

"좋은말 할 때 옷 벗어"…절도와 강도, 그리고 공갈의 미묘한 차이
공주는 시녀의 눈빛, 체구, 그리고 그동안의 행실 등을 통해 순순히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혼쭐이 날 것이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또 왕궁에서 곱게 자란 공주라면 충분히 시녀의 협박조의 목소리만으로도 겁을 먹고 제압당하기에 충분했을 지 모른다.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것만으로 재산과 약혼자인 왕자까지 거머쥔 시녀에게서, 내공 깊은 강도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PODCAST- 낭만파괴법】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낭만파괴법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좋은말 할 때 옷 벗어"…절도와 강도, 그리고 공갈의 미묘한 차이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7월 29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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