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성공한 인생이라 하지요…하지만 저는 후회합니다"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14.06.2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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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인터뷰] 강지원 변호사의 '성공론'

편집자주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이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이른바 '루저(loser, 패자)'로 전락합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는 이토록 루저들이 넘쳐나는 걸까요. 머니투데이는 오랜 시간 해법을 고민한 끝에 우리 사회 '성공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뜻을 모아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지원 변호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달 인터뷰를 통해 소중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이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던 시절, 그 어렵다는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 경기고에 입학할 때는 한 문제 차이로 전교 차석으로 입학했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른바 'KS 마크'가 달린 인재였다. 이후는 더 화려하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더군다나 사법고시는 수석합격이었다.

하지만 강지원 변호사(65)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후회한다"고 잘라 말했다. 승자의 여유, 가진 자의 궤변 정도로 들릴 법하다. 인터뷰를 마쳐갈 때쯤, 마음 속 2% 정도 자리잡고 있던 그런 의심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타인의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아파 하고 있었다.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손을 잡고 '루저없는 사회-성공의 기준을 바꾸자'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강 변호사는 '내 일'처럼 기뻐했다. 명확한 상황인식은 물론이고, 대안도 뚜렷하게 갖고 있었다. 30여년 '청소년 지킴이' 역할을 해오면서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2시간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인데, 정작 본인은 후회하신다니 뜻밖입니다.
▶사실 제 성적은 들쑥날쑥 했어요. 대학시험에 떨어져 재수도 했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도 한 번에 붙질 못했어요. 저는 공부를 그리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저는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말하기와 연설에도 소질이 있었어요. 방송반 활동도 열심히 했지요.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곧잘 눈물을 흘렸고, 종교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제가 검사가 된 겁니다. 제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한 거죠. 그러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검사로 일하면서 우연히 비행청소년의 눈물을 봤습니다. 그 눈물이 저를 운명처럼 청소년운동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진정한 '나의 길'을 찾은 겁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을 넘어서 타인까지 사랑함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운명처럼 청소년운동에 이끌린 뒤 △서울보호관찰소 소장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 △국무총리실 성매매방지기획단 공동단장 △세계효문화본부 부총재 △청소년인권보호법률지원단 단장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위원장 △타고난적성찾기국민실천본부 상임대표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매진해 오고 있다. 2012년에는 매니페스토 실천운동 차원에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완주한 바 있다.)

-2011년에 타고난적성찾기국민실천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단체 이름이 독특합니다.
▶지난 주에 법인체 허가가 났어요. 퇴직교장 20~30명이 모여 자신들이 교직생활을 할 당시는 못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이루고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세가 다들 있어 활동력은 떨어지지만 1년에 한 번씩 적성찾기 운동을 한다든가 강연을 하는 식으로 소박한 모임을 갖고 있어요.


-왜 타고난 적성찾기인가요.
▶대한민국에서는 99%가 대학 진학을 희망합니다. 그 중에서 실제로 70~80%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35~40%에 불과합니다. 영국도 30% 안팎입니다. 축구선수가 돼야 할 아이가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있으니 학교폭력이 생기고, 일탈이 나오는 겁니다. 청소년들의 비행을 한 순간에 '싹' 없애는 방법이 바로 자신의 타고난 적성을 찾아주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는 게 '적성'이에요. 그 적성을 찾아서 이뤄가는 학생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직장이 크든 작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적성입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의 끝없는 고통은 바로 제 적성을 찾지 못하고 신기루를 쫓아다니는 데 있습니다.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적 낭비이자 국가적 문제입니다.

-타고난 적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일시적일 수 있어요. 가수가 되고 싶어 방황하던 청소년에게 직접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게 해줬더니, 본인의 노래를 듣고는 실망을 하더군요.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는 직접 체험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적성은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일 수 있습니다. 적성 목록을 한 번 작성해 보세요.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목록화 해 점수를 매깁니다. 점수에 따라 울퉁불퉁한 도표가 나오겠지요. 이게 나의 모습, 적성의 얼굴입니다. 이것을 융합했을 때 자신의 직업이 보입니다. 그 직업은 기존의 직업일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직업의 형태는 고정되지 않고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진로교육은 기존의 직업으로 국한시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자리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꿈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적성 안에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적성을 찾아주면 그들이 새로운 직업을 창출합니다.

-타고난 적성찾기와 경제적 자립이 양립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적성을 찾다보면 경제적인 문제가 걱정되는 부분이 참 많을 겁니다. 생활고를 겪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 수도 있겠지요. 경제적 자립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적성을 찾게 되면 경제적인 걱정을 덜 하게 된다는 겁니다. 적성을 찾으면 심리적으로 행복해지고, 돈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집니다. 더 나아가 적성을 찾아서 행복하게 일하게 되면 먹고 살 길이 열릴 가능성도 굉장히 높아집니다.

저는 실제로 많이 봤습니다. 성악가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음대를 졸업하고 오디션 모집 때마다 응시를 했으나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언제나 학벌, 인맥 때문에 고배를 마시던 이 친구가 먹고살기 위해 항구의 검표원이 돼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저와 인연이 닿아 정말 성악가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니, 노래를 부르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노래를 불러라, 무조건 불러라, 굶으면 어떠냐고 심하게 말해줬습니다. 이 친구가 결심을 하고 친척의 카페에서 무료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감독이 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 친구의 노래를 듣고는 조연으로 발탁해 갔습니다. 본인이 행복하면 언젠가는 행복한 결과가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변호사님의 자녀교육이 궁금해집니다.
▶딸이 둘 있는데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와이프도 경기여고, 서울대를 나온 수재입니다.(강 변호사의 아내는 최근 국무총리 하마평에 오른 김영란 전 대법관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기성교육을 거부하고 대안학교에 보내자고 합의했어요. 덕분에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우리 부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미디어 아티스트, 다른 아이는 영화 전공 후 철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전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대안학교가 변질되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제가 아이들을 대안학교로 보낼 때만 해도 설립취지가 좋았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적성찾기'라는 원칙을 잘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귀족학교로 변질됐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졸업생 축하연설 요청이 와도 안 가고 있어요.(웃음)

-성공의 1단계가 '적성찾기'라는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나 권력 등을 일부러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요.
▶직업과 일, 활동은 궁극적인 꿈을 위한 수단과 방법에 불과합니다. 직업이나 일,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돈이나 권력, 지위, 명성, 인기와 같은 사회적 성과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착각을 합니다.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는 것이지요. 돈이나 권력의 유혹은 큽니다.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수직적인 힘, 지배적인 힘, 권력적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궁극적인 꿈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룬 사람은 성공자가 되고 못 이룬 사람은 실패자가 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99%는 실패자가 될 겁니다. 이는 너무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성취한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을 겁니다. 왜 재벌과 의사, 교수,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요? 직업과 일, 활동 자체를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을 게 아니라 그것들을 수행하는 순간순간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적성찾기, 경제적 자립 말씀은 들었고, 사회적 기여와 관련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도산 안창호 선생은 애기애타(愛己愛他)라고 했고, 기독교에서는 '이웃사랑'이라고 합니다. 전부 같은 말입니다. 나만을 이롭게 하면 '이기주의'지요. 우리 모두가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홍익(弘益) 자본주의입니다. 아시다시피 홍익은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확대입니다.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윤의 적정화가 옳습니다. 경주 '최 부자'는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고 했지요. 행복은 애기애타적 삶에서 나오고, 애기애타적 삶은 홍익적 삶을 향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홍익적 국가가 되고, 홍익 자본주의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적성찾기'입니다.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주제에서 벗어나지만, 배우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 후보 하마평에 올랐는데요.
▶예전에는 저한테도 국무총리 제안이 많이 들어왔지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그런 거 안 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냈습니다.(웃음)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어요. 와이프는 법률전문가이니까 '법률가에 맞는 장소에서 일하겠다, 그런 일자리를 찾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법률공부를 했지만 오히려 사회운동가나 방송진행가에 맞는 사람입니다. 정치개혁 운동도 하고 있으니까 대선에 나간 겁니다. 제가 정말 대통령 당선이 되고 싶었으면 정당에 들어가서 정치인이 됐어야죠. 우리 부부 재산이 집 한 채에 여윳돈 조금 있는 정도인데, 대선 예치금에 수 억원 날려먹었다가 와이프한테 쫓겨날 뻔했습니다.(웃음) 자가용도 없어서 지하철 타고 다녀요.

저는 대선에서 장렬하게 떨어지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이에요. 사회개혁을 하는 것이 정말 행복해서 즐겁게 그 일을 한 거거든요. 그게 적재적소입니다. 그래서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 캠페인에서 정말 빼먹지 말아야 할 단어 중 하나가 적재적소라고 생각해요. 국무총리 감투가 좋다고 개나 소나 몰려든다면 '적재적소'라고 할 수가 없어요.

(대담 : 최중혁 사회부 교육팀장, 정리 : 정봄 대학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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