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출신 선생님 "맞고 할래 그냥 할래? 하다가…"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14.08.2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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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캠페인]'루저' 없는 사회-성공의 기준을 바꾸자 ②'성장학교 별' 김현수 교장

편집자주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고통스러운 입시전쟁, 스펙경쟁, 취업경쟁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이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이른바 '루저(loser, 패자)'로 전락합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는 이토록 루저들이 넘쳐나는 걸까요. 머니투데이는 오랜 시간 해법을 고민한 끝에 우리 사회 '성공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뜻을 모아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지원 변호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달 인터뷰를 통해 소중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요즘처럼 와 닿을 때가 또 있을까. '세월호 참사'로 먹먹한 가슴이 풀어지기도 전에 '윤 일병 사건'이 둔기마냥 머리를 내리친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잔혹함에 이르러서는 아예 넋을 놓고 말문을 잃을 지경이다.

대한민국에 도대체 안전지대가 있기나 한 걸까. 학교 보내도 죽고, 군대 보내도 죽고, 사방이 지뢰밭이다. 그렇다고 집안에만 가둬 키울 수도 없는 노릇. 아들, 딸 가진 이들치고 불안에 떨지 않는 이가 없다.



'김해 여고생 사건'이 알려진 날, 엘리베이터 안 생판 모르는 직장 여성들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정말 이민가고 싶다'는 누군가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는 다수의 그 눈빛들 말이다.

'성장학교 별'의 김현수 교장은 "한국 사회는 참 살기 힘든 사회"라며 "이런 사회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별일 없이 살아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하지만 위로로만 그쳐서는 곤란한 일. "이제는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할 때"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래 참혹한 비극의 씨앗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 우리 가정 곳곳에 뿌려지고 있고, 당신도 예외일 수 없는 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자는 얘기였다.



'성장학교 별'은 문제아, 부적응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을 보듬는 대안학교다. 정신과 의사인 김 교장이 13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김 교장은 상처받은 아이들을 수 없이 접하면서 가정의 실패, 학교의 실패, 나아가 공동체의 실패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갖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로 상처받은 단원고 아이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는 김 교장에게 잠시 짬을 내 '성공의 기준'에 대해 고견을 들려 달라 요청했다.

-머니투데이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성공의 기준이 돈과 지위, 인기·명예인 이상 국민 대다수는 루저(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적성찾기, 경제적 자립, 사회적 기여'가 성공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요, 동감하시는지.
▶동감하니까 인터뷰에 응했지요.(웃음) 우리 별 학교는 이미 동감을 넘어 나름의 실천을 하고 있어요. 별 학교에서는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와의 비교만을 허락합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지 남이 아니니까요.


사실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하고, 못하는 사람은 더 못하게 합니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안 줘요.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살았어요. 1% 승자독식 사회에서 경쟁에 뒤처진 아이들은 포기에 익숙해지고 결국 무기력에 빠집니다. 사회적 초점이 1%에 지나치게 가 있는 거죠. '성공 아니면 포기'의 이분법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이제는 99%가 어떻게 지내고 내면의 상태는 어떤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별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별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이 사회가 분류하는 방식대로 따지면 부적응 아이들입니다. 거의 100% 왕따 출신이죠. 이미 많이 혼냈으니까 그만 혼내고 따뜻하게 대해 주자고 강조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아이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혼나는 아이들일 겁니다. 교사든, 부모든 아이들에게 '잘한다, 괜찮다, 충분하다, 놀아라' 이런 얘기보다는 '못한다, 더 해라, 부족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 않나요? 어떤 아이의 일기장을 보니 이렇게 써 있더군요.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 엄마한테 혼나고, 학교 가서 1교시에 혼나고, 2교시에 뒤에 나가 서 있고, 3교시 때 태도가 불량하다고 야단맞고, 점심시간에 만날 혼나는 아이라고 따돌림 당하고, 5교시 때 자다 한소리 듣고, 6교시 끝나고 집에 오니 엄마가 학교에서 연락받았다며 또 혼내고, 학원 갔더니 학원 선생님이 학원 물 흐린다고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래서 잠깐 피시방 갔다가 집에 가니 엄마한테 다 들었다며 아버지가 두들겨 패 울면서 잠들었다.'

아이들 얘기인데요, 선생님은 잘하는 아이 다섯, 못하는 아이 다섯, 이렇게 10명만 기억하는 뇌구조를 가졌대요. 그래서 중간의 20명은 작년에 자기 반이었는지도 잘 모르는 선생님도 있다는 겁니다. 한 반에 공부 잘하는 5명을 빼놓고 25명은 인정받지 못했다는 경험, 성공하지 못했다는 경험, 실패했다는 경험을 느끼고 살아요. 많은 아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갖게 되는 섭섭함, 중요한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슬픔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평범한 부모들에게 아이를 혼내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엄마들의 말을 한 번 볼까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했냐? 안 했냐?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빨리 해. 다 했어? 그럼 씻고 자." 이런 말만 되풀이하죠. 중학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잘했어? 또 혼났어?"를 반복합니다. 아이들이 좀 크면 반항을 합니다. 그러면 엄마 버전이 '아빠한테 이른다'로 달라집니다.

저는 이런 대화를 '압박 대화', 이런 가족을 '채권 가족'이라고 불러요. 아이들은 '내가 전생에 엄마한테 공부로 빚졌나?'하는 생각이 든대요. 엄마는 "세상에 오르지 않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아빠 월급과 네 성적"이라고 응수하죠.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방임하는 겁니다. '했냐' 다음에는 '안 하면 죽인다'로 나갑니다. 부모와의 대화가 주로 이런 식이에요.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오늘 기분은 어땠니?"라고 물어보는 부모가 별로 없어요.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아이들이 위기 속에서 살고 있고, 미래 사고의 잠재적 피해자·가해자로 볼 수 있겠네요.
▶제가 85학번인데 저만 해도 고3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세계 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뇌와 방황이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허락이 안 됩니다. 오로지 시험 문제만 풀라고 하죠. 학원 가느라 명절 때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집도 못 갑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가 청소년기를 강탈하고, 가족관계까지 해체시키고 있는 겁니다.

10대 때 고뇌, 탐험, 모색 이런 게 허락되지 않으니까 20대에도 정체성을 찾지 못합니다. 결국은 무기력한 20대를 만들고, 결혼을 미루는 30대를 만들고, 방황하는 40대를 양산합니다. 정신연령은 나이에 0.7, 0.8을 곱하라는 얘기까지 있어요.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만 먹습니다. 국가가 모두를 지각인생을 살게 만드는 거죠. 청소년기에 책 한 권,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겠어요?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다양성, 다원성, 개성 이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회구조입니다. 과격하게 얘기하면 학력 전체주의예요. 성공의 전형이 딱 한 가지입니다. 명문대 나와서 좋은 직장 취직해 높은 연봉을 받는 것. 부모로서는 이 이데올로기를 따라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부모 세대 스스로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삶의 목표는 스스로의 행복에 있습니다. 그러려면 개개인의 행복이 존중돼야 합니다. 개개인의 행복을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게 다양성과 다원성에 대한 인정입니다. 우리 문화가 이런 걸 인정하는 문화가 아닌 거죠.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입에 밴 말이 '잘하냐, 못하냐'입니다. '잘하냐, 못하냐' 한 가지 기준, 잣대로 따지면서 전체주의가 시작됩니다. 전체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은 '정답사회'입니다. 별 학교에는 정답이 없어요. 아이 그림에 '잘 그렸냐, 못 그렸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그렸느냐가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에 숨통을 틔어주려면 초등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다 바꿔야 합니다. '못한다',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 각자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칭찬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뒤따르지 않으면 전체주의 사회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사진=이기범 기자/사진=이기범 기자
-끝으로 한 말씀.
▶대한민국 아이들이 제일 불쌍합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만성학습피로증후군'이에요. 초등학교 입학 전 단계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을 받습니다. 공부가 싫다고 하는 애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옵니다. 이게 이어지면 '만성인생피로증후군'이 됩니다. 내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삶에 익숙해져버리죠. 한국사회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 '참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OECD 최장시간 근로, 최장시간 학습인 나라에서 부모자식 간 대화가 없는 게 개인의 탓일까요? 1% 사회는 필연적으로 고독사회를 부릅니다. 고독사회의 미래는 암울해요. 어떻게든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자유와 자율에 기초한 다양한 지자체 제도를 지원하고 활성화시켜서 마을 주민 스스로 일어나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그 출발은 인식의 변화입니다.

사람은 청소년기에 가졌던 꿈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지금까지의 말 다 잊어버리셔도 이 한 말씀만 좀 기억해 주세요. '제발 아이들 좀 적게 혼냅시다!'

◆김현수 교장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불규칙하게 살기, 되는대로 하기, 외박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기, 잘 씻지 않기, 가공음식 먹기 등 나쁜 습관이 이 때 모두 들었다. 자취, 가족과의 재결합, 얹혀살기 등을 반복하다 교회와 학교의 도움으로 중앙대 의대 진학에 성공한다. 빈곤과 장애, 상처를 겪은 아이들의 삶에 주목, 소년교도소와 보호관찰소에서 사회 부적응아를 만나고 이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2001년 서울 봉천동에 '사는기쁨' 신경정신과를 개업했으며, '빵과 영혼'이란 상담센터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실패가 내면화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성장학교 별'을 설립, 지금까지 교장을 맡고 있다. 성장학교 별은 치유적 대안학교의 모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프레네 교육을 국내에 도입하고 확산하는 데도 기여했다. 별 학교의 목표는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다.

(대담 : 최중혁 사회부 교육팀장, 정리 : 고은별 대학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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