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한제분이 출자해 만든 동물병원 브랜드 '이리온'은 2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서울 강남 등 수도권에 5개 분점을 냈다. /사진=머니위크
한국직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수의사 평균 연봉은 약 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개원해서 자리잡은 수의사까지 포함한 것이고, 대개 수의사 월 초봉은 150만원 수준이다.
◇영리법인 동물병원의 위협
병원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만 차릴 수 있다. 그러나 동물병원은 수의사 면허가 없어도 영리법인을 통해 만들 수 있다. 이런 영리법인들이 개원 수의사들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곰표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의 동물병원 브랜드 '이리온'이 대표적인 영리법인 동물병원이다. 2011년 만들어진 이리온은 서울 강남과 수도권에 다수 분점을 내며 확장했다.
이에 대응해 기존 동물병원들도 프랜차이즈를 통한 대형화에 나서면서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수의사들도 늘고 있다. 송씨는 "영리법인과 프랜차이즈 동물병원들은 수의사마다 매출 그래프를 그려놓고 압박한다는 소문까지 있다"며 "수의사가 올바른 진료에만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매출 압박을 받고 과잉진료를 하게 되면 결국 보호자들만 피해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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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甲' 애견카페
수의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인터넷에 퍼져있는 수많은 반려동물 커뮤니티와 잘못된 정보들. 수의사에게 오기 전 인터넷으로 이미 반려동물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을 내려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수의사는 "강아지가 다리만 절어도 뼈, 신경, 근육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병원에 강아지를 데려와서 '엑스레이나 찍어달라'고 한 뒤 뼈에 이상 없으면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자기 다리 아프면 별 검사 다 할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유독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섣불리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고 비판했다.
보호자의 잘못된 정보를 시정해주려던 또 다른 수의사는 애견카페 회원들의 집단공격과 괴소문에 시달렸다. '사기꾼'소리까지 들으며 고민하던 이 수의사는 결국 애견카페 회원들에게 강아지 발톱 무료관리, 간식 제공 등을 약속하고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제살 깎아먹는 '반값 진료권'까지
수의사들은 "수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린 이들 때문에 업계가 위기에 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매출에만 매달리는 일부 수의사들이 소셜커머스에 '반값 진료권'을 올리고 찾아오는 보호자들에게 과잉진료로 바가지를 씌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들은 의사, 약사와 달리 정치권에 진출한 수의사가 없다는 점도 안타까워했다. 수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이우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77)가 유일했다. 2004년 이후 정치권에 아무런 '연줄'이 없으니 대한수의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수의사는 1만2000여명. 동물병원은 대·소형 병원과 동물원 부속 병원, 물고기병원 등까지 합쳐 3600여개에 달한다.
한 수의사는 "의사나 약사는 업계의 요구를 정치권에서 관철시키는 데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며 "애완견 진료 부가가치세 부과 철폐, 동물약품 처방제 의무화 등의 업계 요구와 관련해 수의사회가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