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한의원들이 집단 휴업에 나선 지난 1월 17일 서울 시내 한 한의원에 붙은 안내문. 전국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천연물신약 무효화와 정부의 불공정 정책을 규탄하며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사진=뉴스1
'점잖고 돈 많이 버는 전문직'으로 알려진 한의사가 예전 같지 않다. 각종 건강식품과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상으로 '보약 매출'이 급감했다. 수입이 줄어드니 자흉침(가슴확대 침구 시술) 등 미용 시술로 시장을 넓혀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한의사 잡는 비아그라와 홍삼
한의사 업계의 수입은 2000년대 초반 피크를 친 뒤 줄곧 내리막길이다. 당장 보약 판매가 급감했다. '비아그라', '시알리스' 등 양방 발기부전 치료제가 나오면서 '해구신', '웅기단', '흘사기' 등 한방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해구신'의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캐나다 물개의 포획량은 2001년 연간 25만마리에서 지난해 9만마리 이하로 급감했다.
지난 3월 발효된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 역시 골칫거리다. 이 법에 따라 한약 처방을 캡슐에 그대로 담아 '전문의약품'으로 출시하면 의사만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활맥모과주', '청파전' 등 전통 한약이 캡슐에 담긴 채 'XXX 정', 'XXX 캡슐' 등 양약품으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 '활맥모과주'를 본딴 'XXX 정'은 현재 대한한의사협회와 식약처 사이 천연물신약 고시 무효 소송이 진행중이다.
◇양극화된 한의원
* 출처:건강보험통계연보 및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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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의사 월평균 소득은 565만원이었다. 이는 30년 이상 경력의 '명의'로 소문난 한의원 원장 등도 포함된 평균치다. 국가고시에 갓 합격한 새내기 한의사들 중에는 월급이 3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젊은 한의사는 "한의원 몇개씩 거느린 '명의' 한의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세 한의원은 하루 10명도 안 되는 손님 받으면서 점점 빚만 늘어간다"고 푸념했다.
◇양방 의사들의 견제까지…
한의사들은 양방 의사들의 '비(非) 과학' 공세도 한의원 몰락에 한 몫 한다고 지적했다. B한의사(30·여)는 "내진한 환자에게 '보약 먹었느냐'면서 간 독성, 암 악화, 임산부 합병증 등을 모두 한의학 치료의 탓으로 돌리는 의사들이 많다"며 "독자적인 매커니즘을 갖고 발전한 한의학에 대해 '비과학' 낙인 찍는 의사들의 밥그릇 쟁탈전이 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한의사와 의사의 밥그릇 싸움은 한의원의 의료보험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한방 의료보험이 처음 도입된 1986년 26%에 달했던 한방 의료보험 비중은 지난해 4% 아래로 떨어졌다.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은 "노인 질환 등은 양방요법보다 한의학 진료 효과가 훨씬 뛰어나다"며 "양방진료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잘못된 폄하행위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한의사는 "한약제 원료 가격은 30여년 동안 400배 가까이 올랐는데 약가는 한푼도 안 오르고 보험수가에 한번도 반영된 적 없다"며 "한의사협회가 의사협회보다 힘이 없어 정부와 교섭 한번 제대로 못하니 한의학 업계가 점점 망해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