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고층빌딩 사이에서 살인적 업무강도와 연봉 삭감에 허덕이는 애널리스트들이 늘고 있다. /사진=머니위크
# 한 대형증권사 RA(Research Assistant: 보조연구원)로 3년 동안 근무한 A씨(30)는 최근 자산운용사로 이직했다. '증권시장의 냉철한 분석가' 애널리스트가 되길 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보고서(리포트) 작성도 힘들지만, 이는 전체 업무의 3분의 1도 안됐다. 영업 지원 자료를 만들고 지점 교육 다니는 '영업 2중대' 생활이 계속됐다. A씨는 "정작 본업으로 생각했던 리포트 업무가 적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거래급감, 애널리스트 연봉에 직격탄
반면 주식 거래대금은 2년새 반토막이 났다. 지난 2011년 1702조원에 달했던 코스피시장 거래대금은 지난해 1196조원으로 급감했다. 올 상반기 거래대금은 507조원에 불과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전체 거래대금은 1000조원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 애널리스트 수는 매년 1월 기준/출처=금융투자협회
이는 애널리스트들의 연봉 삭감으로 이어졌다. 증권사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외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을 20%씩 삭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RA 초봉이 3000만원도 안 되는 증권사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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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 업무시간···낮아지는 은퇴연령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1일 평균 근무시간은 14시간 안팎으로 알려져있다. 또 주 6일 근무가 일반적이어서 주 80시간 근무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1주일에 9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애널리스트는 "주로 아침 7시에 나와 밤 10~11시에 퇴근한다"며 "다른 선배 애널리스트 중에는 새벽 4시30분에 출근하고 주6일 근무하는 분도 계시다"고 귀띔했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1주일 평균 90시간씩 일할 경우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2만원을 조금 넘는다.
애널리스트들의 연령대도 점차 내려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4년말 41.2세였던 애널리스트 평균연령은 2011년 6월 33.4세까지 낮아졌다. 20~30대가 전체의 77%다. 같은 기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의 평균연령은 39.7세에서 33.2세로 낮아졌다.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들을 거느리는 리서치센터장의 주요 연령대도 과거 40대 후반∼50대 초반에서 40대 초중반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사실상 40대 초중반이면 애널리스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당장은 회사원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듯 보여도 수명이 짧으니 결국 미래 소득을 미리 끌어다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낮아진 문턱···이직시장 냉각
한때 증권가 '스카웃 전쟁'의 중심에 섰던 애널리스트들이지만 이제는 대접이 달라졌다. 한 증권사 인사팀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애널리스트 숫자를 줄어지는 않아도 결원이 생긴 자리에 새로 사람을 안 뽑는 식으로 숫자를 줄인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 등록 요건이 완화된 것도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해 금융투자협회는 '금융투자전문인력과 자격시험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타 업종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옮길 경우 RA 1년 의무 근무 규정을 삭제했다. 금융투자분석사 자격증 취득 의무가 면제되는 기관도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연구원 2곳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한국은행·금융기관·상장법인·공공기관 등이 출자한 연구기관 등으로 대폭 늘어났다.
한 애널리스트는 "RA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지 못한 일반 기업 사람들도 애널리스트도 쉽게 들어오면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이 더 내려갈 것"이라며 "데려다 쓸 사람이 많아지니 증권사들도 연봉 두자리수 삭감 얘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보기술(IT) 분야를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36)는 "요즘 국내에서 활동하는 62개 증권사 대부분이 IT분야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어 이직하기도 마땅치 않다"며 "결국 40대 초반이 돼 업계 수명이 다 하면 갈 곳은 자산운용사나 IT업체 IR(투자자관리) 담당부서 정도 밖에 남지 않는데 그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