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약사 "병원 앞 호객행위, 월급은 고작…"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3.08.26 07:01
글자크기

['사'자의 몰락-5회] 경쟁심화 '폐업' 급증, "'개인 약국' 꿈도 못꿔"

편집자주 직업명 끝에 '사'가 들어간 전문직을 성공의 징표로 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전문직의 입에서도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낮아진 문턱과 경쟁 심화로 예전의 힘과 인기를 잃어버린 전문직의 위상을 돌아본다.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올해 약사가 된 A씨(23·여)는 최근 약국 측의 요구로 호객 행위에 따라 나섰다. 서울 송파구 소재 한 대형 병원 앞에서 환자들에게 파스와 명함을 나눠주고 승합차에 태워 약국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병원 앞에서 환자로부터 처방전을 받자마자 무전기로 약국에 연락해 '조제 지시'를 내리는 것이 A씨의 역할이었다. 한번은 병원 측에 적발돼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대형 병원은 교통 통제 등을 이유로 이 같은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A씨는 "술집 호객꾼들이 불법 전단지 돌리다 단속되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나 스스로가 한심해 죽겠다"고 말했다.



A씨가 처음 출근한 날 일을 가르쳐준 사람은 약사가 아닌 이른바 '카운터'라고 불리는 '약국 직원'이었다. 연봉도 A씨보다 높다. 약국을 찾은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각종 영양제며 건강드링크를 팔아치우는 데 '선수'다. 환자들은 가운 입고 상담하는 '카운터'를 보며 약사라고 착각한다. A씨는 뒤편에서 묵묵히 처방전에 따라 약봉지를 쌀 뿐이다.

얼마 전 A씨는 재고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쳤다. 인근 대형 병원에서 소염진통제로 주로 '디클로페낙' 처방을 내려 재고를 넉넉히 쌓아놨는데, 돌연 '에토돌락'으로 바뀌었다. 재고를 털어내려고 처방전과 다른 약을 조제하면서 손님과 '약값 흥정'까지 했다. 결국 약국장의 잔소리를 들으며 재고 물량을 다른 약국에 '떨이'로 넘겨야 했다.



개인 약국의 꿈은 이미 사라졌다. A씨는 "페이(월급받는) 약사로 돈 좀 벌어 내 약국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다"며 "차라리 병원 많이 입주한 건물주 아들에게 시집가는 게 더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대형병원 인근 약국의 권리금은 수억원에 이른다. 서울 종로구의 한 20㎡ 규모 약국의 경우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이지만 권리금이 5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과 생활용품, 화장품 등을 종합 판매하는 '올리브영', '왓슨스' 등 드럭스토어가 점점 늘어나면서 개인 약국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8월 현재 전국의 약국은 약 2만여 곳. 절반 가량이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돼 있다. 약국 숫자는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11년 폐업 약국 수(1683)가 처음으로 개업 약국 수(1666)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폐업 약국 수(1853)가 개업 약국 수(1732)보다 100곳 이상 많았다. 폐업 약국의 대부분이 개인 약국들이다. 지난해 6월말 기준 전국 3만2606명의 약사 가운데 2만8112명이 병원이 아닌 개인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약국은 줄어드는데 약사들 간 경쟁은 더 심해진다. 과거 매년 1300여명씩 늘어나던 약사는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도입 이후 매년 2000여명씩 증가하고 있다. 자연스레 수입도 정체돼 있다. 2009년 월평균 245만원 가량이던 약사 소득신고는 2010년 249만원, 2011년 246만원으로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A씨는 "소득신고 탈루분을 감안하더라도 대형병원 앞의 이른바 '문전약국'이 아니면 한달에 300만원 이상 받는 월급 약사는 거의 없다"며 "약사 평균 소득이 약국장들의 소득까지 합친 것임을 감안하면 일반 약사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