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이석기와 '무장봉기'의 추억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3.09.0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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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트] 만약 혐의 사실이라면 '집단사고', '행동편향' 등의 결과

'내란음모'(?) 이석기와 '무장봉기'의 추억


# 살을 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1919년 1월15일, 독일 베를린. 키가 150cm도 채 안 돼 보이는 왜소한 40대 여성이 싸늘한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 여인을 둘러싼 남성들은 총의 개머리판으로 여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이 끔찍한 광경은 여인이 숨을 완전히 거둔 뒤에야 끝났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의 시신은 다리 위에서 운하로 내던져졌다.

급진적 혁명을 위해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최후다. '붉은 로자'로 불린 이 혁명가를 우파 의용단은 재판에도 넘기지 않고 현장에서 처단했다. 그리고 '혁명'은 실패했다.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듬해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左翼小兒病)'이라는 책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인 혁명 전략의 폐해를 지적했다.

이른바 '내란음모 의혹 사건'이 최근 정국을 강타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로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국정원과 검찰이 일부 매체를 통해 전한 '녹취록'에는 국가 주요시설 타격 등을 거론한 일부 진보인사들의 발언이 담겨있다.



이 내용 자체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녹취록의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등의 발언은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

1980년대 주체사상의 교본이었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이 녹취록과 관련, "우리가 대학 다니던 전두환 정권 때 정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떻게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게 됐을까?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3.8.29/뉴스1(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3.8.29/뉴스1
1980∼1990년대까지도 대학가 운동권들은 '무장봉기' 또는 '무장투쟁'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무장봉기 방식에는 정파 또는 계열마다 다소 차이가 있었다.

소위 '민중민주'(PD) 계열은 1871년 '파리코뮌'을 무장봉기의 원형으로 보고, 특정 거점을 점령해 이른바 '해방구'를 만드는 전략을 선호했다. 이를테면 서울시내 대학이나 서울 퇴계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네거리를 일시 점거하는 등의 방식이다.

반면 '항일무쟁투쟁사' 등을 공부한 일부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들은 특정 거점을 타격하는 유격전(게릴라전)을 중심으로 무장봉기를 꿈꿨다. 이 의원이 속한 통진당 역시 NL 계열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두 계열에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수많은 정파로 사분오열 나뉜 PD 계열은 끊임없이 논쟁(사상투쟁)을 벌였던 반면 NL 계열은 비교적 분열이 덜했고 그만큼 논쟁도 적었다. 어떤 지시에 대해 너무 과격하다며 반대하면 '심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개 이 같은 조직 분위기는 소속원들의 '집단적 편향성'을 가중시키고 현실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어빙 재니스(Irving L. Janis) 예일대 심리학 교수가 소개한 '집단사고'(Groupthink)가 이런 경우 나타난다. '집단사고'란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 외부로부터 분리된 채 의사결정을 할 때 시야가 좁아지고 집단적으로 비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또 주변의 모든 사람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따라가게 되는 '사회적 검증'(Social proof)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만약 국정원과 검찰이 주장하는 '내란음모'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들이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행동편향'(Action bias)에 사로잡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동편향'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참지 못해 비합리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이 의원이 주도하는 '자생적 NL'인 경기동부연합은 NL 내에서도 오랜 기간 '직계'가 아닌 '방계'로 지내왔다. 스스로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절박함은 때론 '무리수'로 이어질 수 있다.

철학자 파스칼이 남긴 말이 뇌리를 맴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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