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강기영
하지만 장씨는 최근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문의조차 전혀 없다. 소위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장씨는 그나마 보증금이라도 건져보려고 살던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작은 면적의 아파트로 이사하려다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들으면서 시름이 커졌다.
같은 단지 내 면적이 작은 101.91㎡의 전셋값이 1억5000만~1억6000만원선인 반면 장씨 보유의 아파트는 1억3000만원에도 매물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인근 다른 아파트 84㎡의 전세시세가 대출이 없는 경우 1억7000만~1억8000만원선이었다.
'미친 전셋값'으로 불릴 정도로 극심한 전세난 속에서도 경기 김포·고양·용인 등 수도권 일부지역에선 중대형 전세아파트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아파트 전셋값이 지난 22일 기준으로 48주 연속 올랐지만 중대형아파트 전셋값은 '예외'다.
◇역전된 아파트 전셋값 '작은 집이 더 비싸'…중대형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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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도권 외곽 지역의 중개업소를 돌아본 결과 장씨 아파트 같은 사례는 많았다. 김포한강신도시 장기동 고창마을 B아파트 역시 전용 101.87㎡의 전셋값은 1억5000만~1억6000만원선이지만 124.86㎡는 1억4000만원선으로 1000만원 정도 더 저렴했다.
장기동 인근 J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요즘 소형아파트는 자고나면 전셋값이 오르고 물건이 나오기가 무섭게 계약되지만 중대형은 수요가 너무 없어 소형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전세는 실거주가 목적이어서 관리비 부담이 큰 중대형을 찾는 수요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J아파트도 84.87㎡의 전셋값은 2억원 초반대에 형성됐지만 이보다 큰 133.6㎡는 1억7000만~2억원선에 불과하다. 인근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형일수록 아파트값에서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아 큰 면적의 아파트를 피하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분양아파트 전세로 전환한다고?…"중대형아파트 두번 죽이는 일"
정부가 최근 '4·1부동산대책'의 후속조치로 건설기업들이 보유한 미분양아파트를 전셋집으로 내놓을 경우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김포·청라·파주 등 수도권 외곽의 미분양주택 밀집지역에서 전세를 놓고 있는 하우스푸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대형아파트 하우스푸어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란 게 주변 중개업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오는 9월부터 수도권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가 전세시장에 나오면 세입자들이 줄줄이 이들 주택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전세로 전환될 미분양의 경우 전셋값이 주변 시세보다 낮고 정부가 전세금 반환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신뢰가 높아서다.
인천 청라신도시 경서동 인근 K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중대형이 소형아파트에 비해 전셋값이 1000만~2000만원밖에 차이가 안나는데도 세입자를 못구하는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에 따라 전세물량이 쏟아지면 기존 세입자들은 다 '정부보증 전셋집'으로 갈아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4·1대책 후속조치 시행으로 중대형이 대부분인 '준공후 미분양' 물량이 전세로 풀리면 전셋값이 더 내려갈 수 있다"며 "정부의 의도대로 전셋값은 안정시킬 수 있으나 주변 지역의 하우스푸어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